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도종환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름답게 빛나는 시절이 짧다는 것이다.
많은 꽃나무들이 그렇듯 사람도 아름다운 시절은 짧다.
빛나는 시절은 짧고
그 시절을 추억으로 지니며 사는 날들은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날들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초조해하고 조바심을 낸다.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꽃 주위에 사람이 많고
향기를 좇아 발길이 모여들다가
바람과 꽃숭어리를 툭툭 떨구고 나면
조금씩 찾아오는 발길이 줄어들고,
꽃 진자리에 비슷비슷한 잎들이 돋아날 때쯤이면
찾는 이가 없게 된다.
가까이 다가와서 바라보지 않으면
저 나무가 살구인지 산수유인지 구분이 안 되고
목련인지 함박꽃나무인지 분간이 안간다...
그러나 꽃나무에게 꽃피던 짧은 날들만 소중하고
꽃을 잃고 지내야 하는 그 많은 날들이 의미 없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
나무에게 있어서 꽃피던 날들만이 아니라
잎이 무성하던 날들도 열매를 맺으려
고통스럽던 날들도 그 열매를 지키기 위해 견뎌온 날들도
다 소중한 것이다.
진정으로 나무를 사랑한다면
우선 나무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어야 한다.
꽃이 아니라 설령 잎마저 지고 열매마저 다 잃고 난 뒤에
빈 가지만으로 겨울바람을 맞고 서 있어도,
그리하여
정말 그 나무가 무슨 나무였는지 알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나무는 나무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다.
그렇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게 소중하게 보듬을 줄 아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Billities/Anne V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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