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환 (金東煥, 190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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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나도야, 종달새가 되고 진달래 꽃이 되어
먼저 부끄럽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
왜냐하면 <봄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기는 했어도 작사자가 시인 김동환 님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궂이 변명을 하자면, 김동환 님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꼽히는 <국경의 밤>의
저자가 아니시던가.
국경國境의 밤 / 파인巴人 김동환
1
"아하, 무사히 건넛슬가,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업시 건너슬가?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거문 순사가
왓다 --------- 갓다 --------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너슬가?"
소곰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노코
밤 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네 젓던 손도 맥이 풀녀져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깁허 가는데.
(이하 생략)
전체 3부 72장으로 된 장편 서사시로 국경지대인 두만강변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여
인의 애절한 삶을 통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환을 그린 대서사시 <국경의 밤>을 두
고 <봄이 오면>과 같은 달콤한 연애 시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뿐이 아니었다. 오래 전에 가수 박재란이 불러 유행시켰던 <산너머 남촌에는>도 그분의
작품이라는 데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문학의 황무지를 개간했던 시인으로 민중적民衆的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인 관념觀念으로
그의 소박하며 진솔한 작품들은 애국애족의 작품들로서 서민적, 야성적, 낭만적이라는 평
가를 받고있으나, 불행하게도 6.25전쟁 때 납북되어 정확한 생사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제하의 친일문제 등으로 그가 이룩한 문학적 성과와 기여도에 비해 이렇다할 기념비 조
차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님을 기리는 뜻에서 몇 편 더 들여다보기로 하자.
<봄비(春雨)>
마른 산에 봄비 나리니
금시에 청산되는 것을,
청산이 따로 있던가
비맞아 숨살면 청산 되는 것을,
우리도 언제
저 청산같이 푸르청청하여보나.
<山너머 南村에는>
1
山너머 南村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四月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五月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南村서 南風 불 제 나는 좋데나.
2
山너머 南村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여 안오리
南村서 南風 불 제 나는 좋데나.
3
山너머 南村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있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五月의 하늘이 열리면>
五月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생황, 피리, 거문고 다 버리고 알몸으로 오시라
보리밭, 밀밭, 원두밭 제마다
가지가지의 고운 새가 아름다운 곡조로 그대를 맞아주니
五月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고까신, 면류관, 桃紅띠 다 버리고 알몸으로 오시라
산골과 벌판을 거니는 사이에
이름 모를 꽃과 풀이 그대를 왕자같이 꾸며 놓으리
五月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가난과 외롬과 근심을 다 잊고 알몸으로 오시라
여기 드높은 재에 올라 흐르는 구름 쳐다 보느라면
富貴란 뜬 구름, 부러울 것 없으리니
五月의 하늘이 열리면 벗이여
산으로 오사이다, 들로 오사이다
부자도 한간방, 미인도 한줌 밥에 살거니
이 너른 벌판에 그대 오직 王者로 居하시리이다
<웃은 죄>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일제 강점과 해방, 동족상잔의 전쟁과 납북이라는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고뇌에 찬 한 인간으로써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시의 힘"이 아니었을까.
이는 내가 "시가 꿈이 되고 위로가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물러가고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
한국의 슈베르트로 불리는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께서 평양 숭실중학교 5학년 때 작곡하셨다는
가곡 <봄이 오면>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김동환 님의 시를 테너 김성길 님의 노래로 들으며
봄이 오면 나도야, 종달새가 되고 진달래 꽃이 되어 오는 봄에게 수작이나 걸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