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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팝송

Oh, My Darling Clementine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My Darling Clementine"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알려진 곡인데 특히 1849년 광활한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수많은 금광이 발견 되자
일확천금을 노린 서부 사나이들이 이 지역으로 밀려 들어와 흔히 '골드 러시'를
이룬 시기부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는 애창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넓고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있네.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으로 개사돼 애창곡이된 '클레멘타인'은 19세기
부터 작자미상으로 전래된 미국민요 라고 합니다. 

 

 

 동굴이나 골짜기로 광맥(鑛脈)을 찾아다니는 한사나이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네.
그녀는 매일 아침9시 물가로 오리를 데리고 갔는데, 어느날 돌에 걸려 넘어져 그만

거품이 이는 수렁에 빠졌네. 루비와 같은 입술에 물거품이 천천히 흘렀네.
그러나 나는 헤엄을 칠줄 몰라 사랑스러운 클레멘타인을 살려내지 못했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한 중년 남자의 애처로운 사연을 담은

'클레멘타인'(Clementine)의 노랫말입니다.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가 마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 클랜턴(존 아일랜드) 일당을 힘겹게 퇴치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멋쟁이 보안관 어프가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타나자
딸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스)이 '아빠 마치 사막에 홀로 피어 있는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 같아'라는 말을 건네는 장면에서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데 가슴 뭉클할 정도로
부녀 지간의 뜨거운 혈육의 정을 부추겨 주는 역할을 합니다.

1941년 빙 크로스비가, 58년에는 조지 해밀튼4세가 취입해
빌보드 싱글 차트 톱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미치 밀러 합창단"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리메이크하여 불렀던 클레멘타인은
국내에서도 김두영 감독, 이동준·스티븐 시걸 주연의 국산 영화 '클레멘타인'에서
태권도 세계 챔피언 경기에서 판정으로 우승을 놓친 체육인이
홀로 딸을 키우면서 겪는 애환 을 위로해 주는 배경 음악으로
흘러 나와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얻음바 있습니다.
 
 
Clementine (클레멘타인)
In a cavern, in a canyon
Excavating for a mine
Dwelt a miner, forty-niner
And his daughter Clementine

1849년 어떤 계곡의 동굴에서
금맥을 찾아 헤매이던
어느 광부와 그의 딸
클레멘타인이 살고 있었죠

** Refrain **
Oh my darling, oh my darling
Oh my darling Clementine
You are lost and gone forever
Dreadful sorry, Clementine

오~ 내 사랑 오~내 사랑
오 내 사랑 클레멘타인
네가 영원히 내곁을 떠나갔기에
가슴이 미어질듯 아프단다

Drove the ducklings to the water
Every morning just at nine
Hit her foot against a splinter
Fell into the foaming brine

그애는 매일 아침 9시만되면
오리떼를 몰고 물가로 나가곤 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거센 물결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지요

In my dreams, she still doth haunt me
Broken garments soaked in brine
Though in life I used to hug her
Now she's dead I draw the line
How I missed her, how I missed her
How I missed my Clementine
Then I kissed her little sister
And forgot my Clementine

꿈속에 그애는 여전히
물에젖고 찢긴 옷을 입고 나타나곤 했었죠
그애가 살아있었을 때는 자주 안아주곤 했었지만
그애가 죽은 이제는 선을 그어야만 했지요

내 사랑 클레멘타인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그 후 그애의 어린 여동생에게 키스하고 난 후에야
내 클레멘타인을 잊을 수가 있었죠

 

 




Oh, My Darling Clementine'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 이미자

 

클레멘타인 / 이미자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바람부는 하루날에 아버지를 찾으러
바닷가에 나가더니 해가 져도 않오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My darling Clementine- Mitch Miller Chorus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900년대 초기에 "올드 랭 사인",

"메기의 추억" 등과 같이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최초로 들어온 외국 노래였는데 이 때 가사는 양악계의 원로인

박태준 박사의 형님되는 박태현씨의 번안 가사라고도 전해진다.

삼면이 바다를 접하고 있는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가사가 바뀐

이 애조 띤 노래는 당시 나라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있던

우리 민중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1946년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원제:My darling Clementine)"에서

타이틀 곡으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헨리 폰다가 주연을 맡았고

서부역사의 전설적인 보안관인   와이어트 어프와 품위있고

우아한 아름다운 처녀 클레멘타인과의 사랑을 노래했던 작품으로

서부 개척시대 사람들의 어려움과 정의를 수호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의로운 정서를 나타낸 영화는

존 포드 감독의 후기 역작으로 오늘날까지 평가되고 있다.

 
 
Clementine
깊은 계곡 광산마을 동굴집이 있었네
늙은 아빠 어여쁜 딸 사랑으로 살았네
오 내사랑 오 내사랑 귀여운 내 클레멘타인
너는 영영 가버리고 나만 홀로 남았네
이젠 다시 볼수없네 요정같던 그 모습
네가 신던 작은 신발 내 마음이 아프다
오 내사랑 오 내사랑 귀여운 내 클레멘타인

 너의 모습 늘 그리며 나만 슬피 남았네

스틸이미지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와이어트 어프가 클레멘타인을 두고 떠난다.

서부영화의 영원한 프레'나의사랑 클레멘타인'의 멜로디가 매우 인상적인데,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후, 이 민요도 유명해졌다.

오래된 미국 민요로 작자가 미상이지만 1883년에 퍼시 몬트로즈가

이것을 등록한 바 있으나, 가사로 미루어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은

1849년 골드 러시 직후가 맞을 것 같다.

임...떠나가야 멋 있어 1849년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몰려왔던 티나이너(forty-niner)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포티나이너들은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 등으로 많은 수가 목숨을 잃다.  

또한 자신들이 캐낸 황금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탈감에 빠져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라는 자조섞인 노래를 부르게 된 이후 널리 퍼져나갔다.

서부개척사중 백인의 비애인 포티나이너....

주제가를 들으면

혹독한 노동착취를 당하던 포티나이너들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스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