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풍경사진촬영

추석날 고향마을 전경('16.9.15)

우리 고향 마을은 100가구가 넘는 마을이다.

인구가 500여명이었고 초등학교 동창만 해도 남녀 11명이다.

우리 동네는 반 이상이 밀양박씨 집안이다.

고조, 증조 할아버지 자손들이며 모두 한 집안이다.

내가 촌수가 제일 높다.

어렸을때 어머니 따라 시장에 가면 다들 어머님을 보고

마님 오셨냐고 인사들 하였다.

우리 고향 5일장이 무척 큰장이었고 전주 정읍에서도

알려진 큰 장이 섰던 곳이다.

우리 마을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내가 어려서는 우리 집안 어른들이 동네 모든일을 결정했었다.

추석 전날 저녁엔 마을 청년들이 콩콜대회를 개최하곤 하였다.

마을 정자나무에는 그네를 메달고 탔다.

보름날이나 무슨 날이면 어른들은 농악놀이를 하였다.

지금은 추석날 고향에 가도 집안 어른들도 많이 돌아가시고

동네 노인들만 계신다.

추석날도 예전같이 시끌벅적 하지 않고 너무 조용했다.

그때 그시절이 그립다.

 

 

 

10일 후면 밤송이가 벌어질것 같다.

  아랫모종, 15여년전만 해도 모종 마당엔 가지가 축 늘어진 수양버들 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지금은 모두 베어내고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름날이면 왼쪽 기와집 모종에서 잠자고 회의도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었다.

농악놀이도 큰나무를 돌면서 제를 지내고 윗 모종 느티나무에도 제를 올리고

농악놀이를 시작했었다. 어렸을땐 광대가 무서웠다

  고구마 꽃이 나팔꽃 같다. 난생 처음 실물 꽃을 봤다.

 

 

  저 멀리 보이는 기와집이 우리 큰집이다.

  대추가 먹음직스럽게 달렸다.

  윗 모종이다.

  모종 주위에 논들은 우리 큰형님 논이다.

 

 

어렸을때 오르내리며 놀던 느티나무(정자나무)이다.

예전모습 그대로다, 더 크지도 굵지도 않는다. 200여년된 정자나무다.

  그네를 메달던 정자나무이다.

옛 모습 그대로이다.

  위에 기와집은 우리 할아버지때 부터 살던 큰집이다.

  우리 큰집, 내가 어렸을대 사랑채도 여려채였고 말도 두마리 있었고

큰 대문 앞에는 말을 올라탔던 큰돌이 있었다.

제사도 자주 있었다.

지금은 사랑채도 허물고 논과 밭으로 만들었다.

▲ 위 탱자나무 울타리 기와집도 우리 할아버지 집이었다.

동네 한가운데 제일 터가 넓은 기와집이다.

우리 할아버님이 옛날 참봉 어른이셨다.

어려서부터 참봉 할아버지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

 

 

 

 

 

 

▲ 도로는 공주중이다.

'● 풍경사진촬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량도에서 무지게('17.5.16)  (0) 2017.05.16
동백꽃('16.11.26)  (0) 2016.11.26
추석연휴 용인에서('16.9.13)  (0) 2016.09.18
5월의 장미꽃('16. 5. 12)  (0) 2016.05.14
사량도의 봄('16.4.15)  (0) 201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