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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시모음

이해인 님 시모음

 

가을 노래 / 이해인 님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의미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나 그대에게 고운 향기가 되리라  / 이해인 님

초승달이 노니는 호수로
사랑하는 이여!
함께 가자
찰랑이는 물결위에
사무쳤던 그리움 던져두고
꽃내음 번져오는 전원의 초록에
조그만 초가 짓고 호롱불 밝혀
사랑꽃을 피워보자구나
거기 고요히 평안의 날개를 펴고
동이 트는 아침
햇살타고 울어주는 방울새 노래
기쁨의 이슬로 내리는 소리를 듣자구나
사랑하는 이여!
일어나 함께 가자
착한 마음 한아름 가득 안고서
나 그대에게
황혼의 아름다운 만추의 날까지
빛나는 가을의 고운 향기가 되리라


낙엽 / 이해인 님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
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내일이면 오늘 되는 우리의 내일/이해인 님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 없는 조용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 <익어가는 가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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