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한 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거다
부르심
나의 神은 잠잠하다
바람 속에만 말씀하신다
귀 막아도 들리는
가슴 속 파도 소리
목마르다
목마르다
바람 불면
바람 속에 나는
혼자일 수 없다
해질녘 바다에서
내가 만난 영혼들이
손을 내밀고
끝없이 보채는
당신의 기침 소리
그 소리 비켜
이제는 어디로도
떠날 수 없다
비밀
겹겹이 싸매 둔 장미의 비밀은
장미 너만이 알고
속으로 피흘리는 나의 아픔은
나만이 안다
살아서도 죽어 가는
이 세상 비인 자리
이웃과 악수하며 웃음 날리다
뽀얀 외롬 하나
구름으로 뜨는 걸
누가 알까
꽃밭에 불밝힌
장미의 향기보다
더 환히 뜨겁고
미쁜 목숨 하나
별로 뜨는 사랑
누가 알까
비갠 아침
비갠 아침
하나의 태양이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춘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듯한
기쁨.
꽃의 죽음으로 태어난
한 알의 사과를
아무런 고마운 마음도 없이 먹어버린 데 대한
조그만 슬픔
사랑하는 이가 앓고 있어도
대신 아퍼줄 수 없고
그저 눈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뼈아픈 막막함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삶을 배운다
그리고 조금씩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사랑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와진다는 것을.
사랑과 침묵과 기도의 사순절에
주님,
제가 좀더 사랑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사랑을 새롭히는 사순절이 되면
닦아야 할 유리창이 많은듯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제 삶의 일과표엔 언제나
당신을 첫자리에 두고서도
실제로는 당신을 첫자리에
모시지 못했음을 용서하소서
올해에도 우선 작은 일부터 사랑으로
이렇게 적혀 있는 마음의 수첩에
당신의 승인을 받고 싶습니다, 주님.
성당 입구에서 성수를 찍거나
문을 열고 닫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저의 조그만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은 끊임없이 찬미받으소서
식사하거나 이야기하거나
그릇을 닦거나 걸레를 빠는 것과 같은
일상의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좀 더 침묵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침묵을 배우는 사순절이 되면
많은 말로 저지른 저의 잘못이
산처럼 큰 부끄러움으로 앞을 가립니다
매일 잠깐씩이라도 성체 앞에 꿇어앉아
말이 있기 저의 침묵을 묵상하게 하소서
제가 다는 헤아리지 못하는 당신의 고통과 수난
죽음보다 강한 그 극진한 사랑법을
침묵하는 성체 앞에서
침묵으로 알아듣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익히는 사순절이 되면
잔뜩 숙제가 밀려 있는 어린이처럼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성서와 성인전을 머리맡에 두고
거룩함에 대한 열망을 새롭히는 계절
제가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던
가까운 이웃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 번도 제대로 기도를 못한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 속에서도 주님,
기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주소서
제 안에 사제로 살아 계신 당신이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심을 믿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제가 먼 광야로 떠나지 않고서도
매일의 삶 속에 당신과 하나 되는
즐거운 사순절이 되게 하소서
사랑도 나무처럼
사랑도 나무처럼
사계절을 타는 것일까
물오른 설레임이
연두빛 새싹으로
가슴에 돋아나는
희망의 봄이 있고
태양을 머리에 인 잎새들이
마음껏 쏟아내는 언어들로
누구나 초록의 시인이 되는
눈부신 여름이 있고
열매 하나 얻기 위해
모두를 버리는 아픔으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충만의 가을이 있고
눈 속에 발을 묻고
홀로서서 침묵하며 기다리는
인고의 겨울이 있네
사랑도 나무처럼
그런 것일까
다른 이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그리움의 무게를
바람에 실어 보내며
오늘도 태연한 척 눈을 감는
나무여 사랑이여
산위에서
그 누구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묻으려고 산에 오른다
산의 참 이야기는 산만이 알고
나의 참 이야기는 나만이 아는 것
세상에 사는 동안 다는 말 못할 일들을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기 어려워 산에 오르면
산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 준다
좀 더 참을성을 키우라고 내 어깨를 두드린다.
산처럼 바다처럼
산을 좋아하는 친구야
초록의 나무들이
초록의 꿈 이야기를 솔솔 풀어내는
산에 오를 때 마다
나는 너에게 산을 주고 싶다
수많은 나무들을 키우며 묵묵한 산
한결 같은 산처럼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 함께 새롭히자.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야
밀물과 썰물이 때에 따라 움직이고
파도에 씻긴 조가비들이
사랑의 노래처럼 널려있는
바다에 나 갈 때 마다
나는 너에게 바다를 주고 싶다
모든 걸 받아안고 쏟아낼 줄 아는 바다
바다의 넉넉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우리 함께 배우자.
젊음 하나만으로도
나를 기쁨에 설레이게 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선한 것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을
목말라하는 너를 위해
나는 오늘도 기도 한다
산의 깊은 마음과 바다의 어진 마음으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살아 있는 날은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깍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선물의 집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바닥이 나지 않는 선물의 집
무엇을 줄까
어렵게 궁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쁘게 할 묘안이
끝없이 떠오르네
다른 이의 눈엔 더러
어리석게 보여도 개의치 않고
언어로, 사물로 사랑을 표현한다
마침내는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네, 서로에게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괴로움도 달콤한 선물의 집
이 집을 잘 지키라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준 것이겠지?
슬픈 날의 편지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 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언젠가 이런날이 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당신과의 영원한 이별은
깊은 슬픔입니다.
사랑이 너무많아
잠시도 쉴 틈 없이 삶이 고달파도
누구보다 행복했던 마더 테레사
메마른 세상 곳곳
사랑의 샘을 만들고
인종과 이념의 벽을 넘어
누구에게나 평화의 어머니가 되셨던
마더 테레사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랑의 예수와
이젠 하늘 나라에서
모든 시름 잊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반세기 동안
당신이 뿌려놓은
사랑과 희망의 씨앗들은
당신을 따르는 선교회 수녀들과
당신을 기리는 이들의 삶을 통해
길이 꽃피고 열매 맺을 것입니다.
겸손과 신뢰가 출렁이던
당신의 푸른 눈을 들여다보고
오래된 나무처럼 투박했던 당신의 두
손을 잡고
이기심과 욕망을 부끄러워하며
맑고 순한 기쁨만 가슴에 가득한
만남의 순간들을 항상 기억하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당신의 그 마지막 말씀을
다시 삶의 지표로 세우고
끝까지 가야할 사랑의 길을
우리도 기쁘게 달려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안녕히 가십시오.
아름다운 순간들
마주한 친구의 얼굴 사이로
빛나는 노을 사이로,
해뜨는 아침 사이로
바람은 우리들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메꾸며
빈자리에서 빈자리로 날아다닌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잡아 흔들며,
때로는 텅빈 운동장을 돌며
바람은 끊임 없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 아름다운 바람을 볼 수 있으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함을
우리에게 끓임 없이 속삭이고 있다.
어떤 별에게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르지만
산에서 하늘을 보면
금방이라도 가까이
제 곁에 내려앉을 것 같습니다
다른 별에 비하면
지구는 아주 작은 별이라는 걸
얼른 이해할 수 없듯이
때로는 그 안에
먼지처럼 작은 내가 있음을
자주 잊어버리며 삽니다
요즘은 혜성, 목성이 거대한 충돌로
온 세계가 하늘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큰 별과 별, 천체의 부딪침이 신기하고 놀랍듯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어느 순간 섬광처럼 부딪쳐 일어나는
사랑의 사건 또한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것인가요?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그 황홀한 내면의 빛은
소리 없이 활활 타올라
우주를 밝히고 세상을 구원합니다
그래서 사랑할 땐 우리도 별이 되고
이미 별나라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심하게 부딪치고도 깨어지지 않는
지상에서의 사랑을 별나라에까지 들고 갑니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손 시린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와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보름달에게 .2
네 앞에 서면
늘
말문이 막힌다.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오르면
할 말을 잊는 것처럼
너무 빈틈없이 차올라
나를 압도하는 달이여
바다 건너
네가 보내는
한 가닥의 빛만으로도
설레이누나
내가 죽으면
너처럼 부드러운 침묵의 달로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한 번씩 떠오르고 싶다.
오늘을 위한 기도
오늘 하루의 숲속에서 제가 원치 않아도
어느새 돋아나는 우울의 이끼, 욕심의 곰팡이,
교만의 넝쿨들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가는
끗끗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소서.
어제의 열매이며 내일의 씨앗인 오늘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는
어느 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오늘의 약속
내가 돌보지 못해
墓碑처럼 잊혀진
너의 얼굴
미안하다 악수 나눌 때
나는 떳떳하고
햇살은 눈부시다
슬픔에 수척해진
숱한 기억들을 지워 보내며
내일 향해 그네 뛰는
오늘의 행복
문을 열어라
나는 너를 위해
한 점 바람에도
흔들리는 풀잎
새 옷을 차려입고
떠날 채비를 하는
나의 오늘이여
착한 누이의 사랑으로
너를 보듬으면
올올이 쏟아지는 빛의 향기
어김없는 약속의
내일로 가라
제비꽃 연가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 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책을 읽는 기쁨
좋은 책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그 향기가 스며들어
옆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한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모두 이 향기에 취하는
특권을 누려야 하리라.
아무리 바빠도 책을 읽는 기쁨을 꾸준히 키원나가야만
우리는
속이 꽉 찬 사람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삶이 풍요로울 수 있음을 감사하라.
책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한 구절로
내 삶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질 수 있음을
늘 새롭게 기대하며 살자.
촛불
말은 이미
끝났습니다.
순백의 가슴 둘레
불꽃으로 피운 눈물
바람에도 휘지 않는 노을빛 사랑
당신은
내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죽어서도 무덤 없는
고독의 불꽃
소리도 안 들리는 곳에서
승천을 꿈꾸며
태워 온 갈망
당신 위해 준비된 나에게
말은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촛불 켜는 아침
밭은 기침 콜록이며
겨울을 앓고 있는 너를 위해
하얀 팔목의 나무처럼
나도 일어섰다
대신 울어 줄 수 없는
이웃의 낯선 슬픔까지도
일제히 불러 모아
나를 흔들어 깨우던
저 바람소리
새로이 태어나는 아침마다
나는 왜 이리 목이 아픈가
살아 갈수록 나의 기도는
왜 이리 무력한가
사랑할 시간마저
내 탓으로 잃어버린
어제의 어둠을 울며
하늘 위에 촛불 켜는 아침
너를 위한 나의 매일은
근심 중에서도 신년 축제의 노래와 같기를 -
그래서 나는
눈무신 언어를 날개에 단
아침 새가 되고 싶었다
햇빛을 끌어내려
젖은 어둠을 말리는 나무 위에
의망의 둥지를 트는
새가 되고 싶었다
친구에게
부를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 주는 친구야
어쩌다 가끔은 할말을 감추어 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보고 싶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그리움과 설레임
파도로 출렁이는 내 푸른 기도를
선물로 받아 주겠니?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던
따뜻한 친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모였다가
어느 날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나 보다
때로는 하찮은 일로 너를 오해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옹졸함을
나의 이기심과 허영심과 약점들을
비난보다는 이해의 눈길로 감싸 안는 친구야
하지만 꼭 필요할 땐
눈물나도록 아픈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진실한 친구야
내가 아플 때엔
제일 먼저 달려오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엔
함께 울어 주며
기쁜 일이 있을 때엔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고마운 친구야
고맙다는 말을 자주 표현 못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너는 또 하나의 나임을 알게 된다
너를 통해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
참을성 많고 한결같은 우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본다
늘 기도해 주는 너를 생각하면
나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나도 너에게 끝까지
성실한 벗이 되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해 본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 못해
힘든 때도 있었지만
화해와 용서를 거듭하며
오랜 세월 함께 견뎌 온 우리의 우정을
감사하고 자축하며
오늘은 한 잔의 차를 나누자
우리를 벗이라 불러 주신 주님께
정답게 손잡고 함께 갈 때까지
우리의 우정을 더 소중하게 가꾸어 가자
아름답고 튼튼한 사랑의 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춤추며 지나가게 하자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좋은 벗이 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모든 이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행복한 이웃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벗이 되자
이름을 부르면 어느새 내 안에서
푸른 가을 하늘로 열리는
그리운 친구야...
플라토닉 사랑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와진다는 것을.
하관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 하나가
네모난 상자에 누워
천천히 땅 밑으로 내려가네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사랑 대신하라 이르며
영원히 눈감은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
흙을 뿌리며 꽃을 던지며
울음을 삼키는 남은 이들 곁에
바람은 침묵하고 새들은 조용하네
더 깊이, 더 낮게 홀로 내려가야 하는
고독한 작별인사
흙빛의 차디찬 침묵 사이로
언뜻 스쳐가는 우리 모두의 죽음
한평생 기도하며 살았기에
눈물도 성수처럼 맑을 수 있던
노수녀의 마지막 미소가
우리 가슴속에 하얀 구름으로 떠오르네
해바라기 연가
내 생애가 한 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쏙아지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않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에서 올올이 뽑는
고운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던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황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江
지울수록 살아나는
당신 모습은
내가 싣고 가는
평생의 짐입니다
나는 밤낮으로 여울지는
끝없는 강물
흐르지 않고는
목숨일 수 없음에
오늘도 부서지며
넘치는 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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