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헌 가는 길> 임보
내가 사는 운수재는
우이동 골짜기에 있고
시인들의 사랑방 시수헌은
산마루 넘어 쌍문동에 있다.
세심천 고갯길로 질러가면 30분
솔밭 지나 언덕기로 돌아가면 40분
짧은 고갯길보다는
긴 언덕길로 돌아서 다닌다
언덕길 밑에는 꽃밭이 있기 때문
한 교회가 가꾼 작은 꽃밭인데
채송화 맨드라미 봉선화 백일홍
예쁜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 꽃들 가운데서도 나를 붙든 것은
‘천사의 나팔’이라는 이국종 꽃
어느 날 꽃밭을 지나다 발을 멈추고
나팔소리 들리나 한참 지켜보는데
나팔소리는 소식도 없고
나비 날개 단 천사의 얼굴이
열 살쯤 되어 뵈는 과수원집 딸이
꽃 속에서 가만히 내다보고 있었다
반 백년이 지나도 늙지 않은 채로
천사가 되어 꽃 속에 살고 있다니
시수헌 가는 길이 더딘 것은
꽃밭에서 잠시 길을 잃기 때문
-임보, <시수헌 가는 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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