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유명한 욕시와 희롱시 한수
김삿갓이 원한의 땅인 조부의 수난임지였던
(선천)에 갔을때 차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온종일
성문밖을 서성대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가까운 글방을 찾았었다.
그러나 젊은 훈장의 태도가 너무 쌀쌀해서 욕시 한수를 건네주었다.
書堂乃早知 서당 은 내조지 요
房中皆尊物 방중 은 개존물 이라
生徒諸未十 생도 는 제미십 이고
先生來不謁 선생 은 내불알 이구나
글방을 알고보니 좌중이 모두 거만하구나.
생도는 열도 못되면서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는구나
시의 뜻은 욕이 아니지만 소리내어 읽던 훈장은
목침을 잘못 던져 학동의 머리를 깨고 말았다.ㅋ~`
그도 사내 라서 음담을 알았던가.
하마터면 동거까지 할뻔한 가련이라는 늙은기생의
딸과 불 끄고 나눈 이야기가 전해온다.
삿갓 : 毛深內闊必過人 모심내활 하니 필과인 이라
숲이 깊고 속이 넓으니 분명 누가 다녀간게 로구나
가련 : 後園黃栗不蜂裂 후원황율 은 불봉렬 이요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유 는 불우장 이라오
뒷산 노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고
개천가 버들가지는 비 안 맞아도 잘자라 늘어 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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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방랑시인인 김삿갓에 대한 일화다
1. 어느날 김삿갓(김병연)은 전라도 화순 적벽에 가는 도중,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어느 서당에 들렸다.
그런데 서당의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이 공부를 하는 지, 감탄하여 한마디 내 뱉었다.
"자지는 만지고, 보지는 조지라."
이 말을 들은 서당선생과 학생들이 욕하는 줄 알고 달려 들어, 김삿갓을 때리려 하자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붙잡혔다.
"어째서 열심히 공부하는 서당에 들어와 욕설이나 하는 것이요?"
"욕이 아니라 하도 열심히 공부해서 감탄하여 격려차원에서 한 말이었소."
그러니까 김삿갓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自知晩知 補知早知=자지만지 보지조지...........자지는 만지고, 보지는 조지라.
自:스스로 자 知:알 지 補:도울 보
晩:늦을만 早;일찍 조
무슨 말이냐 하면,
스스로 알려고 하면 늦게 깨달케 될 것이고,
남의 도움을 받으면 빨리 알게 될 것이다.
즉,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자기 혼자 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보다도 빨리 알게 될 것이다
2. 맨처음 목적지가 금강산 유점사인데 이틀을 걸어서 남한강 상류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건너는데 어여쁜 아가씨가 뱃사공이라,
집에 두고 온 마누라가 생각도 나고해서 은근슬쩍 농을 걸었다.(어이 그만하시길...)
배를 타자마자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르니
아가씨가 “왜? 내가 당신 마누라요?” 라고 되물읍니다.(김삿갓 하지 말라고 했잖아~)
삿갓 왈 “내가 지금 당신의 배를 타고 있으니 당신이 내 마누라지요!”(...)
아가씨는 쓴웃음 지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이윽고 배는 목적지에 다달아 삿갓이 배에서 내리는 순간
“내 아들아 잘 가라!” 라고 아가씨가 말했다.(이것도 전염인가... 큰일이군)
이에 삿갓이
“내가 왜? 당신 아들이요?”라고 하자
뱃사공 아가씨는
“당신이 지금 내 배에서 나가니 내 아들이지요.”라고 했다.
3.
1. 개자식
김삿갓이 팔도 유랑을 하며 어느 시골 장터 뒤의 허름한 장국밥 집에 들렀을 때다.
대나무로 된 지팡이에 의지하고 다 헤진 짚신을 신은 그를 알아 보았다.
“어이, 자네 김삿갓 아닌가?” 다짜고짜 반말이다. 보아 하니 나이도 손아래이다.
“그렇소만….
지친 나그네를 알아주는 사람도 있으니 고맙구려.”
“자네 글 좀 안다고 소문났던데 시 한 수 지어 주면 오늘 밥과 술은 내가 사지.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혀가 반 토막도 아닌데 시종일관 반말로 아랫사람 취급한다.
방앗간이 시원찮아 싸라기밥만 처먹었는지 싸가지라곤 반 푼어치도 없다.
그래도 술 한 잔에 밥 한 상이 어딘가. 든든히 잘 얻어먹고 난 뒤 지필묵을 대령하라 하여
일필휘지로 써 갈겨 내려갔다.
‘천탈관이득일점(天脫冠而得一點)에, 내실매이횡일대(乃失梅而橫一帶)라.’
하늘 천(天) 자가 갓을 벗고(脫冠) 점 하나를 얻었으니(得) 개 犬(견)자요,
이어 내(乃) 자가 매화나무 지팡이를 잃고(失梅) 옆으로 띠를 둘렀으니 아들 子(자)자로다.
한자의 획수를 분해한 파자(破字)로 풀어낸 두 글자를 합치면 犬子 즉, ‘개자식’이다.
글을 아는 귀한 사람의 글인 줄은 알았는지 시건방진 건달 놈이 허겁지겁 챙겨 넣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 개망신한 것을 뒤늦게 안 이 녀석이 죽자 사자 찾아 나섰으나 이미 김삿갓은 자취를 감추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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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삿갓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詠笠 영립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 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해서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 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없는 시인이 되었다....
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시는 표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自嘆 자탄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대나무 시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竹詩 죽시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반반죽죽생차죽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빈객접대가세죽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불여오심죽 연연연세과연죽
한자의 훈(訓)을 빌어 절묘한 표현을 하였다. 此 이 차, 竹 대나무 죽 : 이대로 彼 저 피, 竹 : 저대로 化 화할 화(되다), 去 갈 거, 竹 : 되어 가는 대로 風 바람 풍, 打 칠 타, 竹 : 바람치는 대로 浪 물결 랑, 打 竹 : 물결치는 대로
스무나무 아래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二十樹下 이십수하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은 '쉰'이니 '쉰(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은 '서른'이니 '선(未熟)'의 뜻. 설익은 밥.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이다.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죽 한 그릇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無題 무제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排徊 사각송반죽일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야박한 풍속
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風俗薄 풍속박
斜陽鼓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사양고립양시비 삼피주인수각휘 杜宇亦知風俗薄 隔林啼送不如歸 두우역지풍속박 격림제송불여귀
가난이 죄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가난뱅이도 부자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難貧 난빈
地上有仙仙見富 人間無罪罪有貧 지상유선선견부 인간무죄죄유빈 莫道貧富別有種 貧者還富富還貧 막도빈부별유종 빈자환부부환빈
강좌수가 나그네를 쫓다
사당동 안에서 사당을 물으니 보국대광 강씨 집안이라네. 선조의 유풍은 북쪽 부처에게 귀의했건만 자손들은 어리석어 서쪽 오랑캐 글을 배우네. 주인은 처마 아래서 갓을 숙이며 엿보고 나그네는 문 앞에 서서 지는 해를 보며 탄식하네. 좌수 별감이 네게는 분에 넘치는 일이니 기병 보졸 따위나 마땅하리라.
姜座首逐客詩 강좌수축객시
祠堂洞裡問祠堂 輔國大匡姓氏姜 사당동리문사당 보국대광성씨강 先祖遺風依北佛 子孫愚流學西羌 선조유풍의북불 자손우류학서강 主窺첨下低冠角 客立門前嘆夕陽 주규첨하저관각 객립문전탄석양 座首別監分外事 騎兵步卒可當當 좌수별감분외사 기병보졸가당당
김삿갓을 내쫓은 주인은 나그네가 갔나 안 갔나 확인하려고
갓을 숙이고 엿보는데 김삿갓은 문 앞에 서서 인심 고약한
주인을 풍자하고 있다.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자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 했네.
逢雨宿村家 봉우숙촌가
曲木爲椽첨着塵 其間如斗僅容身 곡목위연첨착진 기간여두근용신 平生不欲長腰屈 此夜難謀一脚伸 평생불욕장요굴 차야난모일각신 鼠穴煙通渾似漆 봉窓茅隔亦無晨 서혈연통혼사칠 봉창모격역무신 雖然免得衣冠濕 臨別慇懃謝主人 수연면득의관습 임별은근사주인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주막에서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艱飮野店 간음야점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옆전 일곱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제목을 잃어 버린 시
수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멱'자를 부르나. 그 '멱'자도 어려웠는데 또 '멱'자를 부르다니. 하룻밤 잠자리가 '멱'자에 달려 있는데 산골 훈장은 오직 '멱'자만 아네.
失題 실제
許多韻字何呼覓 彼覓有難況此覓 허다운자하호멱 피멱유난황차멱 一夜宿寢懸於覓 山村訓長但知覓 일야숙침현어멱 산촌훈장단지멱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멱'(覓)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농가에서 자다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宿農家 숙농가
終日緣溪不見人 幸尋斗屋半江濱 종일연계불견인 행심두옥반강빈 門塗女와元年紙 房掃天皇甲子塵 문도여와원년지 방소천황갑자진 光黑器皿虞陶出 色紅麥飯漢倉陳 광흑기명우도출 색홍맥반한창진 平明謝主登前途 若思經宵口味幸 평명사주등전도 약사경소구미행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빈 배에선 자주 천둥 소리가 들리는데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過安樂見오 과안락견오
安樂城中欲暮天 關西孺子聳詩肩 안락성중욕모천 관서유자용시견 村風厭客遲炊飯 店俗慣人但索錢 촌풍염객지취반 점속관인단색전 虛腹曳雷頻有響 破窓透冷更無穿 허복예뢰빈유향 파창투냉갱무천 朝來一吸江山氣 試向人間벽穀仙 조래일흡강산기 시향인간벽곡선
벽곡은 신선이 되기 위해 곡식을 먹지 않고 수련하는 방법. 안락성에서 안락하지 않게 밤을 지냈음을 풍자했다.
스스로 읊다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自詠 자영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한송고점리 고와별구인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근협운동락 임계조여린 치銖寧荒志 詩酒自娛身 치수영황지 시주자오신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득월즉대억 유유감몽빈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시와 술로 근심을 잊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풍류객의 모습을 그렸다.
고향 생각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영웅 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꿈 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思鄕 사향
西行己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서행기과십삼주 차지유연석거유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우운가향인오야 산하역려세천추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막장비개담청사 수향영호문백두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옥관고등응송세 몽중능작고원유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 까지이다.
즉흥적으로 읊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卽吟 즉음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自顧偶吟 자고우음
笑仰蒼穹坐可超 回思世路更초초 소앙창궁좌가초 회사세로경초초 居貧每受家人謫 亂飮多逢市女嘲 거빈매수가인적 난음다봉시녀조 萬事付看花散日 一生占得月明宵 만사부간화산일 일생점득월명소 也應身業斯而已 漸覺靑雲分外遙 야응신업사이이 점각청운분외요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시시비비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是是非非詩 시시비비시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년년년거무궁거 일일일래부진래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년거월래래우거 천시인사차중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시시비비비시시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시비비시시비비 시시비비시시비
난고평생시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 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남녘 지방은 옛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천금 자제와 만석군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蘭皐平生詩 난고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빈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난고는 김삿갓의 호이다.
잠 많은 아낙네
이웃집 어리석은 아낙네는 낮잠만 즐기네. 누에치기도 모르니 농사짓기를 어찌 알랴. 베틀은 늘 한가해 베 한 자에 사흘 걸리고 절구질도 게을러 반나절에 피 한 되 찧네. 시아우 옷은 가을이 다 가도록 말로만 다듬질하고 시어미 버선 깁는다고 말로만 바느질하며 겨울 넘기네. 헝클어진 머리에 때 낀 얼굴이 꼭 귀신 같아 같이 사는 식구들이 잘못 만났다 한탄하네.
多睡婦 다수부
西隣愚婦睡方濃 不識蠶工況也農 서린우부수방농 부식잠공황야농 機閑尺布三朝織 杵倦升粮半日春 기한척포삼조직 저권승량반일춘 弟衣秋盡獨稱搗 姑襪冬過每語縫 제의추진독칭도 고말동과매어봉 蓬髮垢面形如鬼 偕老家中却恨逢 봉발구면형여귀 해로가중각한봉
게으른 아낙네
병 없고 걱정 없는데 목욕도 자주 안해 십 년을 그대로 시집 올 때 옷을 입네. 강보의 아기가 젖 물린 채로 낮잠이 들자 이 잡으려 치마 걷어 들고 햇볕 드는 처마로 나왔네. 부엌에서 움직였다하면 그릇을 깨고 베틀 바라보면 시름겹게 머리만 긁어대네. 그러다가 이웃집에서 굿한다는 소문만 들으면 사립문 반쯤 닫고 나는 듯 달려가네.
懶婦 나부
無病無憂洗浴稀 十年猶着嫁時衣 무병무우세욕희 십년유착가시의 乳連褓兒謀午睡 手拾裙蝨愛첨暉 유연보아모오수 수습군슬애첨휘 動身便碎廚中器 搔首愁看壁上機 동신변쇄주중기 소수수간벽상기 忽聞隣家神賽慰 柴門半掩走如飛 홀문인가신새위 시문반엄주여비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 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喪配自輓 상배자만
遇何晩也別何催 未卜其欣只卜哀 우하만야별하최 미복기흔지복애 祭酒惟餘醮日釀 襲衣仍用嫁時裁 제주유여초일양 습의잉용가시재 窓前舊種少桃發 簾外新巢雙燕來 창전구종소도발 염외신소쌍연래 賢否卽從妻母問 其言吾女德兼才 현부즉종처모문 기언오녀덕병재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 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贈妓 증기
却把難同調 還爲一席親 각파난동조 환위일석친 酒仙交市隱 女俠是文人 주선교시은 여협시문인 太半衿期合 成三意態新 태반금기합 성삼의태신 相携東郭月 醉倒落梅春 상휴동곽월 취도락매춘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 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시이다.
늙은이가 읊다
오복 가운데 수(壽)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이라고 한 요임금 말이 귀신 같네. 옛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네.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老吟 노음
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오복수운일왈수 요언다욕지여신 舊交皆是歸山客 新少無端隔世人 구교개시귀산객 신소무단격세인 筋力衰耗聲似痛 胃腸虛乏味思珍 근력쇠모성사통 위장허핍미사진 內情不識看兒苦 謂我浪遊抱送頻 내정부식간아고 위아랑유포송빈
요임금이 말하기를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귀하면
일이 많으며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 진다고 했다. 오복(五福)의 첫째는 장수(長壽)라 하나 늙으면 버림 받고 외로워지니
요임금이 이를 알고 長壽는 多辱이라 했다.
노인이 스스로 놀리다
여든 나이에다 또 네 살을 더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데 신선은 더욱 아닐세. 다리에 근력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고 눈에도 정기가 없어 앉았다 하면 조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두가 망령인데 한 줄기 숨소리가 목숨을 이어가네. 희로애락 모든 감정이 아득키만 한데 이따금 황정경 내경편을 읽어보네.
老人自嘲 노인자조
八十年加又四年 非人非鬼亦非仙 팔십년가우사년 비인비귀역비선 脚無筋力行常蹶 眼乏精神坐輒眠 각무근력행상궐 안핍정신좌첩면 思慮語言皆妄녕 猶將一縷線線氣 사려어언개망녕 유장일루선선기 悲哀歡樂總茫然 時閱黃庭內景篇 비애환락총망연 시열황정내경편
김삿갓이 노인의 청을 받아 지은 것으로,
기력이 쇠해서 근근히 살아가면서도 도가(道家)의 경전을 읽으며 허무에 심취한 것을 읊었다.
갓 쓴 어린아이를 놀리다
솔개 보고도 무서워할 놈이 갓 아래 숨었는데 누군가 기침하다가 토해낸 대추씨 같구나. 사람마다 모두들 이렇게 작다면 한 배에서 대여섯 명은 나올 수 있을 테지.
嘲幼冠者 조유관자
畏鳶身勢隱冠蓋 何人咳嗽吐棗仁 외연신세은관개 하인해수토조인 若似每人皆如此 一腹可生五六人 약사매인개여차 일복가생오륙인
어린 꼬마 신랑이 갓을 쓰고 다님을 조롱했다. 솔개를 무서워할 나이에 몸을 가릴 만큼 큰 갓을 쓰고
몸집은 대추씨처럼 작은데 벌써 새신랑이 되었음을 표현했다.
갓 쓴 어른을 놀리다
갓 쓰고 담뱃대 문 양반 아이가 새로 사온 맹자 책을 크게 읽는데 대낮에 원숭이 새끼가 이제 막 태어난 듯하고 황혼녘에 개구리가 못에서 어지럽게 우는 듯하네.
嘲年長冠者 조연장관자
方冠長竹兩班兒 新買鄒書大讀之 방관장죽양반아 신매추서대독지 白晝후孫初出袋 黃昏蛙子亂鳴池 백주후손초출대 황혼와자난명지
훈장을 훈계하다
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 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 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 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訓戒訓長 훈계훈장
化外頑氓怪習餘 文章大塊不平噓 화외완맹괴습여 문장대괴불평허 여盃測海難爲水 牛耳誦經豈悟書 여배측해난위수 우이송경기오서 含黍山間奸鼠爾 凌雲筆下躍龍余 함서산간간서이 능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己 敢向尊前語詰거 죄당태사고사기 감향존전어힐거
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는 말을 하고
김삿갓을 보자 멸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 지었다.
훈장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訓長 훈장
世上誰云訓長好 無烟心火自然生 세상수운훈장호 무연심화자연생 曰天曰地靑春去 云賦云詩白髮成 왈천왈지청춘거 운부운시백발성 雖誠難聞稱道賢 暫離易得是非聲 수성난문칭도현 잠리이득시비성 掌中寶玉千金子 請囑撻刑是眞情 장중보옥천금자 청촉달형시진정
김삿갓은 방랑 도중 훈장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훈장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의적이지 못해서 얄팍한 지식으로 식자(識者)인 체하는 훈장을 조롱하는 시가 여럿 있다.
산골 훈장을 놀리다
산골 훈장이 너무나 위엄이 많아 낡은 갓 높이 쓰고 가래침을 내뱉네. 천황을 읽는 놈이 가장 높은 제자고 풍헌이라고 불러 주는 그런 친구도 있네. 모르는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 돌릴 땐 백발 빙자하며 잔 먼저 받네. 밥 한 그릇 내주고 빈 집에서 생색내는 말이 올해 나그네는 모두가 서울 사람이라 하네.
嘲山村學長 조산촌학장
山村學長太多威 高着塵冠揷唾排 산촌학장태다위 고착진관삽타배 大讀天皇高弟子 尊稱風憲好明주 대독천황고제자 존칭풍헌호명주 每逢兀字憑衰眼 輒到巡杯籍白鬚 매봉올자빙쇠안 첩도순배적백수 一飯횡堂生色語 今年過客盡楊州 일반횡당생색어 금년과객진양주
풍헌(風憲)은 조선 시대 향직(鄕職)의 하나.
기생 가련에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可憐妓詩 가련기시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離別 이별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어느 여인에게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贈某女 증모녀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貴비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거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거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街上初見 가상초견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참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김립시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여인시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메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낯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詠影 영영
進退隨농莫汝恭 汝농酷似實非농 진퇴수농막여공 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篤魁狀 日午庭中笑矮容 월사안면독괴상 일오정중소왜용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침상약심무멱득 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信 不映光明去絶踪 심수가애종무신 불영광명거절종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않은 냉철한 서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지관을 놀리다
풍수 선생은 본래 허망된 말만 하는 사람이라 남이다 북이다 가리키며 부질없이 혀를 놀리네. 청산 속에 만약 명당 자리가 있다면 어찌 네 아비를 파묻지 않았나.
嘲地官 조지관
風水先生本是虛 指南指北舌飜空 풍수선생본시허 지남지북설번공 靑山若有公侯地 何不當年葬爾翁 청산약유공후지 하불당년장이옹
지사를 조롱함
가소롭구나 용산에 사는 임처사여 늘그막에 어찌하여 이순풍을 배웠나. 두 눈으로 산줄기를 꿰뚫어 본다면서 두 다리로 헛되이 골짜기를 헤매네. 환하게 드러난 천문도 오히려 모르면서 보이지 않는 땅 속 일을 어찌 통달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 중양절 술이나 마시고 달빛 속에서 취하여 여윈 아내나 안아 주시게.
嘲地師 조지사
可笑龍山林處士 暮年何學李淳風 가소용산임처사 모년하학이순풍 雙眸能貫千峰脈 兩足徒行萬壑空 쌍모능관천봉맥 양족도행만학공 顯顯天文猶未達 漠漠地理豈能通 현현천문유미달 막막지리기능통 不如歸飮重陽酒 醉抱瘦妻明月中 불여귀음중양주 취포수처명월중
이순풍(李淳風)은 당나라 사람으로 역산(曆算)에 밝았고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었다. 천체의 형상도 모르면서 땅의 이치를 안답시고 명당이라는 곳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누비고 다녔으나 모두 헛수고를 한 것이니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조롱을 했다.
요강
네가 있어 깊은 밤에도 사립문 번거롭게 여닫지 않아 사람과 이웃하여 잠자리 벗이 되었구나. 술 취한 사내는 너를 가져다 무릎 꿇고 아름다운 여인네는 널 끼고 앉아 살며시 옷자락을 걷네. 단단한 그 모습은 구리산 형국이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비단폭포를 연상케 하네. 비바람 치는 새벽에 가장 공이 많으니 한가한 성품 기르며 사람을 살찌게 하네.
溺缸 요항
賴渠深夜不煩扉 令作團隣臥處圍 뢰거심야부번비 영작단린와처위 醉客持來端膽膝 態娥挾坐惜衣收 취객지래단담슬 태아협좌석의수 堅剛做體銅山局 灑落傳聲練瀑飛 견강주체동산국 쇄락전성연폭비 最是功多風雨曉 偸閑養性使人肥 최시공다풍우효 투한양성사인비
오줌이 거름이 되고 또 비바람 치는 새벽에도 문밖에 나가지 않고
편안히 일을 보게 하므로 사람을 살찌게 한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택하여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장기
술친구나 글친구들이 뜻이 맞으면 마루에 마주 앉아서 한바탕 싸움판을 벌이네. 포가 날아오면 군세가 장해지고 사나운 상이 웅크리고 앉으면 진세가 굳어지네. 치달리는 차가 졸을 먼저 따먹자 옆으로 달리는 날쌘 말이 궁을 엿보네. 병졸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잇달아 장군을 부르자 두 사가 견디다 못해 장기판을 쓸어 버리네.
博 박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주로시호의기동 전장방설일당중 飛包越處軍威壯 猛象준前陳勢雄 비포월처군위장 맹상준전진세웅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직주경차선범졸 횡행준마매규궁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잔병산진연호장 이사난존일국공
주객(酒客)과 시우(詩友)가 대청 마루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읊었다. 포(包), 상(象), 차(車), 마(馬)의 활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바둑
흑백이 종횡으로 에워싼 것처럼 진을 치니 승패는 오로지 때를 잡고 못 잡음에 달렸네. 사호가 은거하여 바둑으로 시국을 잊었고 삼청 신선들 대국에 도끼자루 다 썩더라. 뜻밖의 속임수로 세력 뻗을 점도 얻고 잘못 두고 물러 달라 손 휘두르기도 하는구나. 한나절 승부를 걸고 다시금 도전하니 바둑알 치는 소리에 석양이 빛나네.
棋 기
縱橫黑白陳如圍 勝敗專由取舍機 종횡흑백진여위 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秤忘世坐 三淸仙局爛柯歸 사호한칭망세좌 삼청선국난가귀 詭謨偶獲擡頭點 誤着還收擧手揮 궤모우획대두점 오착환수거수휘 半日輪영更挑戰 丁丁然響到斜輝 반일윤영갱도전 정정연향도사휘
사호(四皓)는 진시황 때 난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은 네 은사(隱士).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녹里先生). 삼청(三淸)은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으로
신선들이 산다는 궁의 이름이다.
안경
강호에 사람이 늙어 갈매기처럼 희어졌는데 검은 알에 흰 테 안경을 쓰니 소 한 마리 값일세. 고리눈은 장비와 같아 촉나라 범이 웅크려 앉았고 겹눈동자는 항우와 같아 목욕한 초나라 원숭이일세. 얼핏 보면 알이 번쩍여 울타리를 빠져 나가는 사슴 같은데 노인이 시경 관저편을 신나게 읽고 있네. 소년은 일도 없이 멋으로 안경 걸치고 봄 언덕으로 당나귀 거꾸로 타고 당당히 다니네.
眼鏡 안경
江湖白首老如鷗 鶴膝烏精價易牛 강호백수노여구 학슬오정가역우 環若張飛준蜀虎 瞳成項羽沐荊후 환약장비준촉호 동성항우목형후 삽疑濯濯穿籬鹿 快讀關關在渚鳩 삽의탁탁천리록 쾌독관관재저구 少年多事懸風眼 春陌堂堂倒紫류 소년다사현풍안 춘맥당당도자류
각 행의 끝나는 글자들이 모두 동물 이름이다. 갈매기 구(鷗), 소 우(牛), 범 호(虎), 원숭이 후(후), 사슴 록(鹿),
비둘기 구(鳩), 눈 안(眼), 당나귀 류(류) 접을 수 있는 안경 다리가 두루미 무릎을 닮았다고 해서 학슬(鶴膝)이라 불렀다. 오정(烏精)은 거무스럼한 안경알을 가리킨다.
맷돌
누가 산 속의 바윗돌을 둥글게 만들었나. 하늘만 돌고 땅은 그대로 있네. 은은한 천둥소리가 손 가는 대로 나더니 사방으로 눈싸라기 날리다 잔잔히 떨어지네.
磨石 마석
誰能山骨作圓圓 天以順還地自安 수능산골작원원 천이순환지자안 隱隱雷聲隨手去 四方飛雪落殘殘 은은뇌성수수거 사방비설낙잔잔
돌로 만든 무생물체도 그가 노래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태어났다.
돈
천하를 두루 돌아 다니며 어디서나 환영받으니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 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네.
錢 전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주유천하개환영 흥국흥가세불경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死捨死能生 거복환래래복거 생능사사사능생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산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이 돈이니
당시에도 그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떨어진 꽃
새벽에 일어나 온 산이 붉은 걸 보고 놀랐네. 가랑비 속에 피었다 가랑비 속에 지네. 끝없이 살고 싶어 바위 위에도 달라붙고 가지를 차마 떠나지 못해 바람 타고 오르기도 하네. 두견새는 푸른 산에서 슬피 울다가 그치고 제비는 진흙에 붙은 꽃잎을 차다가 그저 올라가네. 번화한 봄날이 한차례 꿈같이 지나가자 머리 흰 성남의 늙은이가 앉아서 탄식하네.
落花吟 낙화음
曉起飜驚滿山紅 開落都歸細雨中 효기번경만산홍 개락도귀세우중 無端作意移粘石 不忍辭枝倒上風 무단작의이점석 불인사지도상풍 鵑月靑山啼忽罷 燕泥香逕蹴全空 견월청산제홀파 연니향경축전공 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 번화일도춘여몽 좌탄성남두백옹
초목과 꽃이 풍성한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여 읊은 작품이다.
눈 속의 차가운 매화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雪中寒梅 설중한매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 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 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눈 오는 날
늘 눈이 내리더니 어쩌다 개어 앞산이 희어지고 뒷산도 희구나. 창문을 밀쳐 보니 사면이 유리벽이라 아이에게 시켜서 쓸지 말라고 하네.
雪日 설일
雪日常多晴日或 前山旣白後山亦 설일상다청일혹 전산기백후산역 推窓四面琉璃壁 分咐寺童故掃莫 추창사면유리벽 분부사동고소막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하자 중이 거절했다. 김삿갓이 절을 나가려 하자 혹시 김삿갓이 아닌가 생각하고 시를 짓게 했다. 혹(或), 역(亦), 벽(壁), 막(莫) 같은 어려운 운을 불러 괴롭혔지만
이 시를 짓고 잠을 자게 되었다.
눈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雪 설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 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벼룩
모습은 대추씨 같지만 용기가 뛰어나 이와는 친구 삼고 전갈과는 이웃일세. 아침에는 자리 틈에 몸을 숨겨 찾을 수 없고 저녁에는 이불 속에 다리 물려고 가까이 오네. 뾰족한 주둥이에 물릴 때마다 찾아볼 마음이 생기고 알몸으로 튈 때마다 단꿈이 자주 깨네. 밝은 아침에 일어나 살갗을 살펴보면 복사꽃 만발한 봄날 경치를 보는 것 같네.
蚤 조
貌似棗仁勇絶倫 半風爲友蝎爲隣 모사조인용절륜 반풍위우갈위린 朝從席隙藏身密 暮向衾中犯脚親 조종석극장신밀 모향금중범각친 尖嘴嚼時心動索 赤身躍處夢驚頻 첨취작시심동색 적신약처몽경빈 平明點檢肌膚上 剩得桃花萬片春 평명점검기부상 잉득도화만편춘
벼룩의 모양과 습성을 묘사하고 벼룩에 물린 사람의 피부를
복숭아꽃이 만발한 봄 경치에 비유하였다.
고양이
밤에는 남북 길을 제멋대로 다니며 여우와 삵괭이 사이에 끼어 삼걸이 되었네. 털은 흑백이 뒤섞여 수를 놓고 눈은 청황색에다 남색까지 물들었네. 귀한 손님 밥상에선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고 늙은이 품 속에서 따뜻한 옷에 덮여 자니 쥐가 어디에 있나 찾아나설 땐 교만 떨다가 야옹소리 크게 지를 땐 간담이 크기도 해라.
猫 묘
乘夜橫行路北南 中於狐狸傑爲三 승야횡행로북남 중어호리걸위삼 毛分黑白渾成繡 目狹靑黃半染藍 모분흑백혼성수 자협청황반염람 貴客床前偸美饌 老人懷裡傍溫衫 귀객상전투미찬 노인회리방온삼 那邊雀鼠能驕慢 出獵雄聲若大膽 나변작서능교만 출렵웅성약대담
예민한 관찰과 기발한 착상으로 고양이의 생김새와 습성을 표현하였다.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 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老牛 노우
瘦骨稜稜滿禿毛 傍隨老馬兩分槽 수골릉릉만독모 방수노마양분조 役車荒野前功遠 牧竪靑山舊夢高 역거황야전공원 목수청산구몽고 健우常疎閑臥圃 苦鞭長閱倦登皐 건우상소한와포 고편장열권등고 可憐明月深深夜 回憶平生만積勞 가련명월심심야 회억평생만적노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할 수 있다.
송편
손에 넣고 뱅뱅 돌리면 새알이 만들어지고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파서 조개 같은 입술을 맞추네. 금쟁반에 천봉우리를 첩첩이 쌓아 올리고 등불을 매달고 옥젖가락으로 반달 같은 송편을 집어 먹네.
松餠 송병
手裡廻廻成鳥卵 指頭個個合蚌脣 수리회회성조란 지두개개합방순 金盤削立峰千疊 玉箸懸燈月半輪 금반삭립봉천첩 옥저현등월반륜
새알을 만들고 조개 같은 입술을 맞추고 반달 같은
송편을 먹는 묘사에서 시인의 관찰력과 재치를 볼 수 있다.
갈매기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니 모래와 갈매기를 분간할 수 없구나. 어부가(漁夫歌) 한 곡조에 홀연히 날아 오르니 그제야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갈매기로 구별되누나.
白鷗時 백구시
沙白鷗白兩白白 不辨白沙與白鷗 사백구백양백백 불변백사여백구 漁歌一聲忽飛去 然後沙沙復鷗鷗 어가일성홀비거 연후사사부구구
금강산에 들어가다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눈발 흩날리며 걸린 폭포는 용의 조화가 분명하고 하늘 찌르며 솟은 봉우리는 칼로 신통하게 깎았네. 속세 떠난 흰 학은 몇천 년이나 살았는지 시냇가 푸른 소나무도 삼백 길이나 되어 보이네. 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낮종을 치고 있구나.
入金剛 입금강
緣靑碧路入雲中 樓使能詩客住공 연청벽로입운중 누사능시객주공 龍造化含飛雪瀑 劒精神削揷天峰 용조화함비설폭 검정신삭삽천봉 仙禽白幾千年鶴 澗樹靑三百丈松 선금백기수년학 간수청삼백장송 僧不知吾春睡腦 忽無心打日邊鐘 승부지오춘수뇌 홀무심타일변종
봄날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주위에 펼쳐진 경치의 아름다움을 읊었다.
스님에게 금강산 시를 답하다
백 척 붉은 바위 계수나무 아래 암자가 있어 사립문을 오랫동안 사람에게 열지 않았, ? 오늘 아침 우연히 시선께서 지나는 것을 보고 학 불러 암자를 보이게 하고 시 한 수를 청하오. - 스님 우뚝우뚝 뾰족뾰족 기기괴괴한 가운데 인선(人仙)과 신불(神佛)이 함께 엉겼소. 평생 금강산 위해 시를 아껴 왔지만 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소. -삿갓
答僧金剛山詩 답승금강산시
百尺丹岩桂樹下 柴門久不向人開 백척단암계수하 시문구불향인개 今朝忽遇詩仙過 喚鶴看庵乞句來 -僧 금조홀우시선과 환학간암걸구래 -승 矗矗尖尖怪怪奇 人仙神佛共堪凝 촉촉첨첨괴괴기 인선신불공감응 平生詩爲金剛惜 詩到金剛不敢詩 -笠 평생시위금강석 시도금강불감시 -립
한 승려의 청으로 금강산을 읊으려 하나 너무나 장엄하고
기이한 산세에 압도되어 시를 짓지 못하겠다는 내용이다.
묘향산
평생 소원이 무엇이었던가. 묘향산에 한번 노니는 것이었지. 산 첩첩 천 봉 만 길에 길 층층 열 걸음에 아홉 번은 쉬네.
妙香山詩 묘향산시
平生所欲者何求 每擬妙香山一遊 평생소욕자하구 매의묘향산일유 山疊疊千峰萬인 路層層十步九休 산첩첩천봉만인 노층층십보구휴
평소에 한번 와 보고 싶었던 묘향산의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와
산봉우리의 빼어남을 노래하였다.
구월산
지난해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풍경은 늘 구월일세.
九月山峰 구월산봉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작년구월과구월 금년구월과구월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연연구월과구월 구월산광장구월
금강산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도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金剛山 금강산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운의 반복으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높혔다.
경치를 즐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히 꽃이 피었네.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하려나.
賞景 상경
一步二步三步立 山靑石白間間花 일보이보삼보립 산청석백간간화 若使畵工模此景 其於林下鳥聲何 약사화공모차경 기어림하조성하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방랑의 동반자요 거처가 되었으니 발길 닿은
산천경개는 모두 그의 노래가 되었다. 화가가 아름다운 봄의 경치는 그릴 수 있겠지만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 소리는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
영남 술회
높다란 망향대에 나 홀로 기대 서서 나그네 시름을 억누르고 사방을 둘러 보았네. 달을 따라 드나드는 바다도 둘러보고 꽃소식 알고 싶어 산 속으로 들어왔네. 오랫동안 세상 떠돌다 보니 나막신 한 짝만 남았는데 영웅들을 헤아리며 술 한 잔을 다시 드네. 남국의 자연이 아름다워도 내 고장 아니니 한강으로 돌아가 매화꽃이나 보는 게 낫겠네.
嶺南述懷 영남술회
超超獨倚望鄕臺 强壓覇愁快眼開 초초독의망향대 강압기수쾌안개 與月經營觀海去 乘花消息入山來 여월경영관해거 승화소식입산래 長遊宇宙餘雙履 盡數英雄又一杯 장유우주여쌍극 진수영웅우일배 南國風光非我土 不如歸對漢濱梅 남국풍광비아토 불여귀대한빈매
아무리 남쪽 지방의 경치가 좋다한들 집으로 돌아가
물가에 핀 매화 보는 것만 못하니 망향대에 올라 고향을 떠난 자신의 기구한 팔자를 읊고 있다.
회양을 지나다가
산 속 처녀가 어머니만큼 커졌는데 짧은 분홍 베치마를 느슨하게 입었네. 나그네에게 붉은 다리를 보이기 부끄러워 소나무 울타리 깊은 곳으로 달려가 꽃잎만 매만지네.
淮陽過次 회양과차
山中處子大如孃 緩著粉紅短布裳 산중처자대여양 완저분홍단포상 赤脚낭창羞過客 松籬深院弄花香 적각낭창수과객 송리심원농화향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보림사를 지나며
빈궁과 영달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쉽게 구하랴. 내가 좋아하는 대로 유유히 지내리라. 북쪽 고향 바라보니 구름 천 리 아득한데 남쪽에 떠도는 내 신세는 바다의 물거품일세. 술잔을 빗자루 삼아 시름을 쓸어 버리고 달을 낚시 삼아 시를 낚아 올리네. 보림사를 다 보고나서 용천사에 찾아오니 속세 떠나 한가한 발길이 비구승과 한가지일세.
過寶林寺 과보림사
窮達在天豈易求 從吾所好任悠悠 궁달재천개이구 종오소호임유유 家鄕北望雲千里 身勢南遊海一구 가향북망운천리 신세남유해일구 掃去愁城盃作추 釣來詩句月爲鉤 소거수성배작추 조래시구월위구 寶林看盡龍泉又 物外閑跡共比丘 보림간진용천우 물외한적공비구
보림사는 전남 장흥 가지산에 있는절,
용천사는 전남 함평 무악산에 있는 절이다.
한식날 북루에 올라 읊다
십 리 모래 언덕에 사초꽃이 피었는데 소복 입은 젊은 여인이 노래처럼 곡하네. 가련해라 지금 무덤 앞에 부은 술은 남편이 심었던 벼로 빚었을 테지.
寒食日登北樓吟 한식일등북루음
十里平沙岸上莎 素衣靑女哭如歌 십리평사안상사 소의청녀곡여가 可憐今日墳前酒 釀得阿郞手種禾 가련금일분전주 양득아랑수종화
김삿갓이 원산에 이르러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지나다가
정자에 올라 쉬고 있는데 근처에서 어린 과부가 남편 무덤 앞에
술잔을 올리며 내는 곡소리가 슬픈 노래처럼 들려 왔다.
배를 띄우고 취해서 읊다
강은 적벽강이 아니지만 배를 띄웠지. 땅은 신풍에 가까워 술을 살 수 있네.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으랴, 돈이 바로 항우이고 변사가 따로 있으랴, 술이 바로 소진이지.
泛舟醉吟 범주취음
江非赤壁泛舟客 地近新豊沽酒人 강비적벽범주객 지근신풍고주인 今世英雄錢項羽 當時辯士酒蘇秦 금세영웅전항우 당시변사주소진
신풍(新豊)은 한대(漢代)의 현(縣) 이름으로 신풍미주(新豊美酒)라 하여
좋은 술이 나왔다고 함. 항우(項羽)는 초(楚)나라를 세워 한나라 유방과 함께 진나라를 멸망시킨 영웅. 소진(蘇秦)은 중국 전국시대에 말 잘하던 유세객(遊設客)이다. 지금 김삿갓이 놀고 있는 강은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읊었던
그 적벽강은 아니지만 땅은 맛있는 술이 나왔던 신풍과 닮았다. 오늘날의 세상은 돈만 있으면 항우 같은 힘을 낼 수도 있고
술에 취하면 말 잘하는 소진도 될 수 있다.
길주 명천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고장.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하는 것은 없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 없네.
吉州明川 길주명천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길주길주불길주 허가허가불허가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漁 명천명천인불명 어전어전식무어
어전은 함경도 명천군 기남면 어전리이다. 길주는 나그네를 재워주지 않는 풍속이 있어 허가가 많이 살지만
잠자도록 허가해 주지 않고, 어전(漁佃)은 물고기 잡고 짐승을
사냥한다는 뜻인데 이 동네 밥상에는 고기가 오르지 않음을 풍자한 시이다.
산을 구경하다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看山 간산
倦馬看山好 執鞭故不加 권마간산호 집편고불가 岩間재一路 煙處或三家 암간재일로 연처혹삼가 花色春來矣 溪聲雨過耶 화색춘래의 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 奴曰夕陽斜 혼망오귀거 노왈석양사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했으니 산을 구경하기에는
빨리 달리는 말보다 게으른 말이 좋다는 것이다.
환갑 잔치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還甲宴 환갑연
彼坐老人不似人 疑是天上降眞仙 피좌노인불사인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偸得碧桃獻壽筵 기중칠자개위도 투득벽도헌수연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元生員 원생원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 묘과서진사 黃昏蚊첨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 야출조석사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옥구 김 진사
옥구 김 진사가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沃溝金進士 與我二分錢 옥구김진사 여아이분전 一死都無事 平生恨有身 일사도무사 평생한유신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창
십(十)자가 서로 이어지고 구(口)자가 빗겼는데 사이사이 험난한 길이 있어 파촉(巴蜀)가는 골짜기 같네. 이웃집 늙은이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만 어린 아이는 열기 어렵다고 손가락으로 긁어대네.
窓 창
十字相連口字橫 間間棧道峽如巴 십자상연구자횡 간간잔도협여파 隣翁順熟低首入 稚子難開擧手爬 인옹순숙저수입 치자난개거수파
눈 오는 날 김삿갓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자
친구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고 창(窓)이라는 제목을 내며 파촉 파(巴)와 긁을 파(爬)를 운으로 불렀다.
양반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兩班論 양반론
彼兩班此兩班 班不知班何班 피양반차양반 반부지반하반 朝鮮三姓其中班 駕洛一邦在上班 조선삼성기중반 가락일방재상반 來千里此月客班 好八字今時富班 내천리차월객반 호팔자금시부반 觀其爾班厭眞班 客班可知主人班 관기이반염진반 객반가지주인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럼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 수 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그 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
어두운 밤에 홍련을 찾아가다
향기 찾는 미친 나비가 한밤중에 나섰지만 온갖 꽃은 밤이 깊어 모두들 무정하네. 홍련을 찾으려고 남포로 내려가다가 동정호 가을 물결에 작은 배가 놀라네.
暗夜訪紅蓮 암야방홍련
探香狂蝶半夜行 百花深處摠無情 탐향광접반야행 백화심처총무정 欲採紅蓮南浦去 洞庭秋波小舟驚 욕채홍련남포거 동정추파소주경
동정(洞庭)은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배경이 된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홍련을 만나려고 여러 여인들이 자는 기생방을 한밤중에 찾아갔는데
어둠 속에서 얼결에 추파라는 기생을 밟고는 깜짝 놀랐다.
언문풍월
푸른 소나무가 듬성듬성 섰고 인간은 여기저기 있네. 엇득빗득 다니는 나그네가 평생 쓰나 다나 술만 마시네.
諺文風月 언문풍월
靑松듬성담성立이요 청송듬성담성립이요 人間여기저기有라. 인간여기저기유라. 所謂엇뚝삣뚝客이 소위엇뚝삣뚝객이 平生쓰나다나酒라. 평생쓰나다나주라.
서당에서 있을 유(有)자와 술 주(酒)자를 운으로 부르자
언문과 한자를 조합하여 지었다.
봄을 시작하는 시회
데걱데걱 높은 산에 오르니 씨근벌떡 숨결이 흩어지네.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굶주리며 보니 울긋불긋 꽃이 만발했네.
開春詩會作 개춘시회작
데각데각 登高山하니 데각데각 등고산하니 시근뻘뜩 息氣散이라. 시근뻘뜩 식기산이라. 醉眼朦朧 굶어觀하니 취안몽롱 굶어관하니 욹읏붉읏 花爛漫이라. 욹읏붉읏 화난만이라.
산에서 시회가 열린 것을 보고 올라갔는데 시를 지어야 술을 준다고 하자 이 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언문풍월도 시냐고 따지니 다시 한 수를 읊었다.
諺文眞書석거作하니 언문진서섞어작하니 是耶非耶皆吾子라. 시야비야개오자라.
언문과 진서를 섞어 지었으니 이게 풍월이냐 아니냐 하는 놈들은 모두 내 자식이다.
송아지 값 고소장
넉 냥 일곱 푼짜리 송아지를 푸른 산 푸른 물에 놓아서 푸른 산 푸른 물로 길렀는데, 콩에 배부른 이웃집 소가 이 송아지를 뿔로 받았으니 어찌하면 좋으리까.
犢價訴題 독가소제
四兩七錢之犢을 放於靑山綠水하야 사양칠전지독을 방어청산녹수하야 養於靑山綠水러니 隣家飽太之牛가 양어청산녹수러니 인가포태지우가 用其角於此犢하니 如之何卽可乎리요. 용기각어차독하니 여지하즉가호리요.
가난한 과부네 송아지가 부잣집 황소의 뿔에 받혀 죽자 이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이 이 시를 써서 관가에 바쳐 송아지 값을 받아 주었다.
서당 욕설시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나는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파격시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破格詩 파격시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천장거무집 화로접불래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수한사발 지영반종지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월이산영개 통시구이래
이 시는 모든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읽어야 한다. 천장에 거미(무)집 / 화로에 겻(접)불 내 국수 한 사발 / 지렁(간장) 반 종지 강정 빈 사과 / 대추 복숭아 월리(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공씨네 집에서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성),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허언시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虛言詩 허언시
靑山影裡鹿抱卵 白雲江邊蟹打尾 청산영리녹포란 백운강변해타미 夕陽歸僧계三尺 樓上織女낭一斗 석양귀승계삼척 누상직녀낭일두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불알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오랑캐 땅의 화초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지만 오랑캐 땅이라고 화초가 없으랴.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더라도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
胡地花草 호지화초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호(胡)자에 '오랑캐'라는 명사와 '어찌'라는 부사의 뜻이 있다.
낙민루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落民淚 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樂民樓下落民淚 선화당상선화당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趙岐泳家兆豈永 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가조기영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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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고을에서 채씨 노인의 손자를 백교리댁 따님과 혼인 할수 있도록
글자를 알아 맞추어준 은공으로 채노인은 김삿갓을 붙잡아 앉혀 두고
오래도록 함께 하려 했지만 김삿갓은 홀연히 빠져 나와 평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속 어디쯤을 내려 가다가 보니 길가에 성인(聖人)이라는 주기(酒旗)가 보인다.
술집 이름치고는 너무도 엉뚱한 이름이라 호기심이 솟아 서슴치 않고
주막 안으로 들어가니 주막 주인은 여자가 아니고 70이 넘은 늙은이였는데
수염과 머리는 백발이요 풍채도 늠름하여 첫눈에 보아도 예사 노인이 아니었다.
나 술 한잔 주시요 ~
술집 이름을 성인이라 한데는 무슨 연유가 있소이까?
노인이 말하길 옛날부터 좋은 술은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나쁜 술은 현인(賢人)이라 불러오고 있지않소?
우리 집에서는 좋은 술만 팔으니 아예 그렇게 지은것이라오 !
아닌게 아니라 김삿갓이 술을 마셔보니 술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김삿갓은 자기 자신이 유식 하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주막 노인의 말을 들어보면 좋은술은 성인이라부르고
나쁜술은 현인이라 부른다니 그것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해서... 김삿갓이 물었다.
그 호칭에 대하여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름 한건지
정중하게 물었더니 노인이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그것은 위략(魏略)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지요...
식화지(食貨志)라는 책에 보면
소금은 모든 반찬의 으뜸(味鹽食肴之將)이요
술은 모든 약중에서 가장 좋은 약(酒百藥之將) 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사실 모든 음식중에서 술처럼 좋은 음식이 어디 있겠소이까?
그런데 위왕(魏王)이란자는 그것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금주령(禁酒令)을 내려 버린 일이 있었다우...
그러나 나라에서 금주령을 내렸다 해서 술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술을 끊을수는 없는일이라 모두들 밀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감히< 술 >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 좋은 술은 (성인) 나쁜 술은 (현인)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말하자면 은어(隱語)를 써 온것 이지요...
비록 만권 서적을 읽어온 김삿갓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노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노인이 또 말 하기를...
금주령이 그토록 철딱서니 없는 일이건만 그처럼 어리석은 금주령이
우리나라 에서도 실시 되었던 때가 있었다우...
젊은 양반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으로 부터 80여년전 영조때의 일이었지요...
영조는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기 위해 금주령을 내렸는데
그럼에도 불구 하고 금주령을 어기는 일이 허다하자 나라에서는
본보기를 보이기로 작정을 하고 나의 조부님을 사형에 처했다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산업을 장려하고 구휼해서 건질 생각은 아니하고
한낱 금주령으로 해결 하려고 한 잘못된 발상이 이렇듯 죄없는 백성의 가슴에
한을 남기고 한 가문을 망처 놓았으니 어찌 이 나라가 술로 인하여
망하고 흥하는 나라입니까?... 에이 술이나 드시구료...
노인과 김삿갓은 밤새는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권커니 자커니 끝없이 마시고 또 마셨다.
그때 김삿갓의 눈에 바람벽에 기가 막히게 잘쓴 한구절의 휘호가 걸려 있슴을 보았다.
硯田無惡歲 (연전무악세) 글을 쓸때에는 나쁠 때가 없고
酒國有長春 (주국유장춘) 술에 취하면 언제든지 봄이로다
저 글씨는 놀라운 필적인데 누가 쓰신 글씨옵니까?
글씨가 하도 명필이라서 김삿갓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한숨을 토해 내며 저 글씨는 내 조부께서 쓰신 글씨라오...
내 조부님은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보다도 20년이나 연상이셨는데
완당이 명성을 떨치기 전까지는 내 조부가 독보적인 명필이셨다오.
그러나 그 어른이 돌아 가신거나 내가 술장수로 전락 하게 된것도
모두 천운일것이요, 그냥 술이나 마십시다.하며
쓸쓸한 표정으로 처량한 말을 잇는다...
김삿갓 역시 기구한 팔자인지라 자못 노인의 신세가
자신과도 별반 다를바 없어 동정심이 발동 한다.
그래...가족은 아무도 없사옵니까?
허허 ~ 마누라를 셋이나 잃었소이다 ~
세번째 마누라한테서 딸을 하나 보았는데 그 애도 이미 20년전에
평양으로 양녀로 팔려가 버려서 천상천하에 나 하나뿐이라오...
에이 ~ 이제 나도 죽을때가 다 된 모양이구려 ....
그래... 손님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시요?
김삿갓이 평양으로 간다 하니 노인이 자신의 딸을 찾아 달라며
애원조로 간곡한 부탁을 한다.
내 이름은 예동철(芮東哲)인데 딸 아이는 곤옥(崑玉)이라 지었다오...
그 아이 세살때 어미가 죽은후 내가 홀로 키워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영 아이를 굶기고 제대로 키울길 없어 눈물을 머금고 그 애가 일곱살 나던해에
평양에 산다는 어느 기생이 양녀로 달라 하기에 그냥 주어 버렸다오.
그런후 그 아이를 데려간 기생의 이름도 주소도 알길이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소이다.
김삿갓은 불쌍한 예노인의 딸을 반드시 찾아 주어야겠다는 의협심이 일어 났으나
어찌 찾아야 할지 벌써부터 그 방법이 묘연해지기만 할뿐이었다.
김삿갓과 예노인은 기구한 서로의 팔자를 이야기 하며 술로 그밤을 새웠다.
예노인과 작별한 김삿갓은 평양길 50리를 사흘을 걸어 대동강변에 다다르니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어 와서 이 강이 대동강이지요?
하고 뱃사공에게 물어 보았다.뱃사공은 제법 흥청거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이 강은 선남선녀 들에게는 사랑의 대동강이요,
이별의 대동강이요, 눈물의 대동강이라오...
김삿갓은 불현듯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이라는 시가 머리에 떠 올랐다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긴 둑에 비 개어 풀빛 완연한데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고운 님 보내자니 노래는 슬프구나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푸른 물은 언제나 마르련고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로 강물만 해마다 불어 가네
이 대동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헤어졌기에
고려때 부터 그와 같은 시가 나왔을것인가?
뱃사공은 흥겹게 푸른 물결을 갈라치며 배를 저어 나간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수많은 놀잇배들이 떠 있는데
선남선녀들이 가득 타고 노랫소리와 장고 소리가 제법 유량 하기만 하다.
유유창천(悠悠蒼天)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인데 북망산아 말 물어 보자
역대제왕(歷代帝王) 영웅호걸(英雄豪傑)이 모두 다 네게로 가더란 말인가
경리안색(鏡裏顔色)을 굽어보니 검던 머리 곱던 양자(樣姿) 어언간에 백발이로다 ...
때가 봄인지라 훈훈한 봄바람을 타고 멋들어진 수심가는 끊임없이 들려오고 ...
뱃사공도 흥에 겨워 노를 저으며 남의 장단에 맞추어 자기 나름대로 노래를 부른다.
불이 붙는다, 불이 붙는다.
의주 통군정(義州統軍亭)에 붙는 불은 압록강수로 끄고
안주 백상루(安州百祥樓)에 붙는 불은 청천강수로 끄고,
삼산반락(三山半落)은 모란봉(牧丹峰)이요
이수중분(二水中分)은 능라도(綾羅島)라...
능라도 을밀대(乙密臺)에 붙는 불은 대동강수로 끄련마는
이내 가슴에 붙는 불은 무엇으로 끄란 말인가 ...
평양 사람들은 모두가 바람둥이인지 뱃사공의 노랫소리도 춘정에 겨워 있고
듣는이도 어깨춤이 절로이는데 그에게 평야기생에 대하여 물으니
수도 없이 많은 평양기생 이라지만 빼어난 미인이 즐비하고
평양에 와서 객고에 기생한번 품어보지 못하면 천추에 한을 남길 일이라며
2~3 백냥쯤 쓰면 후회없이 노시다 가리다 한다.
드디어 배가 금수산(錦繡山) 앞에 이르니 문득 권근(權近)의 시가 떠 오른다.
峨峨遠岫圍平野 (아아원수위평야) 높디높은 산들은 들을 품어 안았고
衣衣長江繞古村 (의의장강요고촌) 넘실거리는 강물은 옛마을을 감싸는구나
저 멀리 능라도의 푸른 버드나무들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패강가(浿江歌)라는 시가 또 떠올라 읊어본다.
浿江兒女踏春陽 (패강아녀답춘양) 대동강 아가씨들 봄놀이 즐기려니
江上垂楊正斷腸 (강상수양정단장) 수양버들 실실이 늘어져 마음 애닯다
無限烟絲若可織 (무한연사약가직) 가느다란 버들 실로 비단을 짠다면
爲君裁作舞衣裳 (위군재작무의상) 고운 님 위해 춤옷을 지으리
대동강은 개천(价川)에서 흘러오는 순천강(順川江)과
양덕(陽德),맹산(孟山)에서 흘러 내리는 비류강(沸流江)과
강동(江東),성천(成川)등지에서 흘러 내리는 서진강(西津江)등등
세갈래의 물이 모여 큰강을 이루었으니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대동강(大同江)이다.
일찌기 대유(大儒) 정도전(鄭道傳)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흥에 겨워 江水之辭(강수지사) 라는 유명한 노래를 남긴 일이 있었다,
김삿갓은 또 그 싯귀를 떠올려 읊는다.
江之水兮悠悠, 泛蘭舟兮橫中流 (강지수혜유유,범난주혜횡중류)
高管교조兮歌聲發, 賓宴0兮獻酬 (고관교조혜가성발,보연0혜헌수)
或躍兮錦鯉,飛來兮白鷗 (혹약혜금리,비래혜백구)
煙沈沈兮極浦,草처처兮芳洲 (연침침혜극포,초처처혜방주)
覽時物以自娛兮,건忘歸兮夷猶(람시물이자오혜,건망귀혜이유)
景忽忽兮西馳兮,水운운兮逝不留 (경홀홀혜서치혜,수운운혜서불유)
曾歡樂之未幾兮,隱予心兮懷憂 (증환락지미기혜,은여심혜회우)
嗟哉盛年不再至兮,老將及兮夫焉求 (차재성년부재지혜,노장급혜부언구)
軒冕兮당來,富貴兮浮雲 (헌면혜당래,부귀혜부운)
惟君子所重者義兮,名萬古與千秋(유군자소중자의혜,명만고여천추)
擧一杯相屬兮,庶有企兮前修(거일배상속혜,서유기혜전수)
대동강 물이여 유유도 하여라,난주(蘭舟) 뛰웠더니 중류에 걸렸네
피리소리 떠들썩 하고 노랫가락 퍼져가니 손님들 잔치 즐겨 술잔이 오가도다
이따금 펄펄 뛰는 건 금잉어요 날아 드는것은 흰 갈매기
연기는 아득하니 막바지 개울인데 탐스러운 풀 우거져 꽃다운 강뚝일세
제철 맞은 경관 구경하고 스스로 즐김이여, 돌아갈줄 모르고 서성대노나
해그림자 바삐 서녘으로 달림이여,물이 콸콸 달려가 저물지 못하네
환락한 세월 얼마이겠는가,가슴속 남 모르는 근심 품었노라
아아 ~ 한창시절 다시 오지 않음이여,늙음이 곧 닥처 오리니 무얼 다시 구하리요
공명이란 어쩌다가 오는것이며, 부귀는 구름처럼 허망한 것
군자에게 오직 소중한건 의리뿐이라, 천추만대에 이름이 남는다네
술잔 들어 서로 권하노니, 옛 선현 높은 뜻 기려 닦아 나가세.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강산이다,
숱하게 많은 중국사신과 관리들이 오가며
침이 마르도록 우리나라 강산을 찬미 하였다,
그러기에 당나라 사신 사도(史道)는 평양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 하였다.
旣有錦繡山 (기유금수산) 금수라는 비단 산이 이미 있는데
更見綾羅島 (경견능라도) 능라라는 비단 섬을 또 보노라
東人戒驕誇 (동인계교과) 조선 사람들은 그 이상 사치를 경계 하려고
衣裳多素縞 (의상다소호) 일부러 하얀 옷을 입는것인가.
중국 풍류객들은 엣날부터
願生高麗國 (원생고려국) 바라건대 고려국에 태어나
一見金剛山 (일견금강산) 금강산을 한번 보고지고. 하였다 한다.
날이 어두워 오자 강위에 떠 있는 놀잇배에서는 등불들이 하나둘 씩
꽃처럼 피어 오르고 그것은 마치 꿈나라의 환상인것만 같아
김삿갓은 불현득 백낙천(白樂天)의 시를 연상하였다.
幻世春來夢 (환세춘래몽) 꿈 같은 세상에 봄이 찾아드니
浮生水上구 (부생수상구) 허황한 인생이 물거품 같구나
百憂中莫入 (백우중막입) 오만가지 시름 모두 없애려거든
一醉外何求 (일취외하구) 술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랴 !
이제 살아 생전에는 이 평양의 대동강에 다시는 오지 못할것 같은
아쉬움 속에 꽃처럼 피어오른 등불들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시흥이 절로 일어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읊었다.
大同江山仙舟泛 (대동강산선주범)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
吹笛歌聲泳遠風 (취적가성영원풍) 피릿소리 노래소리 바람결에 들려 오네
客子停참聞不樂 (객자정참문부락) 길손은 말 멈추고 시름겹게 듣는데
蒼梧山色暮雲中 (창오산색모운중) 청오산이 구름 속에 저무네
날이 저물자 뱃놀이를 마친 김삿갓은
평양의 밤거리로 들어가 주천(酒泉)이라는 주막에 들었다.
들어가 주모를 찾으니 60대 늙은 여자가 술상을 들고 나오는데 제법 예쁘다.
아마도 젊었을때 기생이었던듯 하여 수작을 걸기를
이곳 주막 이름이 범상치 않은데 누가 지은거요? 하고 물으니
주모는 일찌기 20년전에 세상을 등진 자신의 서방님이 지었다 한다.
이어서 방이 단 하나밖에 없는데 먼저 오신 손님이 있어
그와 같이 잘려면 그리 하라고 한다.
김삿갓이 그럽지요 ~ 하며 방에다 대고
안에 계신 길손은 나와서 같이 한잔 합시다 하며 부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안에서 나이 40쯤 돼 보이는
시골풍의 우둔한 사내가 나와서 술한잔을 쭈욱 마시더니
나는 황해도 옹진에 사는 강 서방이외다 하며 자기 소개를 한다.
옹진의 강서방은 소금을 배에다 가득 싣고와서 뙤돈을 벌었는데
그만 평양 기생한테 빠져서 돈도 몽땅 빼앗기고 달랑 노자 몇푼 쥐어주며
다음에 또 만나자며 기생한테 차인 이야기를 하며 아니 그눔에 기생은
소금 한배를 집어 먹구도 짜다는 말이 없지 모유... 하면서 익살을 떤다.
김삿갓이 넌즛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강서방은 아직도 그 열아홉 앳된 기생과의 몇달 살림이 꿈결만 같아
죽어도 후회는커녕 다시 소금을 실어다 돈을 마련해서 또 한번 만나야겠다 한다.
그때 주막집 노파가 끼어 들며 남자들은 입으로만 먹을줄 알지만
기생들은 생강이든,소금이든,소,말,논밭전지를 죄다 집어먹는 입이 따로있다우 ㅎ~`
얼마전에 전라도에서 왔다는 생강장수는 생강한배를 실어와서 큰돈을 벌었는데
역시 기생한테 홀딱 반해서 한달간 살림하며 죄다 빼앗기고 알거지가 되었다우 ~
그러구서는 기생의 옥문(玉門:생식기)를 들여다 보며 아주 재밋는 시를 지었다우 ~
遠看似馬目 (원간사마목) 멀리서 보면 말 눈깔 같고
近視如膿瘡 (근시여농창) 들여다 보면 진무른 농창 같구나
兩頰無一齒 (양협무일치) 두 볼엔 이가 하나도 없건만
能食一船薑 (능식일선강) 생강 한 배를 몽땅 삼켜 버렸구나
김삿갓은 주막집 노파가 써놓은 전라도 소금장수의
옥문시(玉門詩)를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런 와중에도 주막집 노파는 자꾸만 김삿갓에게 마음을 둔듯
한껏 눈치를 해 오건만 김싯갓은 소름이 끼칠정도로 싫은데
때마침 옹진의 소금장수가 끼어들며 자기를 기둥서방 삼으라며 익살을 부린다.
술도 취하고 피곤하여 방으로 들어가 곤하게 잡이 들었는데
잠을 깨어 옆을 보니 소금장수 강서방이 안보인다?
문득 안방에서 이상한 숨소리가 들리는데...
사실인즉 강서방이 60노파와 역사를 치루는 밤이 될줄이야 ~
세상이치가 이렇구나 ~ 엊그제 까지만 해도 새파란 열아홉살 기생에게
껌뻑죽어 사족을 못쓰던 사내가 이제는 60대 노파를 덮치다니 ...
참으로 해괴망측 하구나 ~ 하며 잠을 청했다.
밤늦게 돌아온 강서방을 놀려주니,
강서방은 아, 나는 선생이 싫은 눈치길래 대신 부역을 치룬거요 ~
내일 아침 보구려 아침상이 푸짐 할테니 ....
아침 상을 받아보니 아닌게 아니라 정성을 들여 보아온 상에는
길손에게 주는 밥이 아니라 귀한 손님에게나 대접하는 그런 푸짐한 아침 상이었다.
덕분에 김삿갓은 포식을 하고 모란봉을 향하여 주천 주막집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김삿갓이 모란봉에 접어드니 때마침 온통 진달래가 피어서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산으로 오르니 시야기 탁 트이면서 저멀리 비단폭 처럼 넘실거리는 대동강과
실실이 늘어져 바람에 나뿌기는 수양버들의 섬 능라도를 보노라니
이곳이 바로 선경인듯 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삼삼오오 짝을 지어 노니는 연인들과 상춘객의 모습에서
평양의 진면목을 보는듯 하여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고려때의 시인
권한공(權漢功)이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을 굽어 보며 지었다는 시를 읊조려 본다.
磯邊綠水春陰薄 (기변녹수춘음박) 모랫가 푸른나무는 봄빛이 엷고
江上靑山暮色多 (강상청산모색다) 물에 비친 청산엔 저녁놀이 짙구나
宛在水中迷遠近 (완재수중미원근) 물 속에 있는듯 원근 조차 모르겠는데
夕陽何處竹枝歌 (석양하처죽지가) 어디선가 석양에 노랫소리 들려오네
눈앞의 풍광이 너무도 황홀하여 김삿갓은 시상이 떠 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릴없이 김종서(金宗瑞)가 모란봉 위에서 지었다는 이별가를 또 떠올린다.
送客江頭別恨多 (송객강두별한다) 임 보내는 강가에 한이 서리어
管絃凄斷不成歌 (관현처단불성가) 풍악소리 처량할 뿐 노래를 못 이루네
天敎風伯阻旌旗 (천교풍백조정기) 하늘은 바람을 시켜 ?을 막고 있는가
一夕大同生晩波 (일석대동생만파) 저녁 대동강에 늦 물결이 거칠구나
만고에 다시없는 시인 김삿갓...
결코 저 당나라적 이백이나 두보에 뒤지지 않는 시재를 지닌 사람
그가 이렇듯 빼어난 풍광을 보며 혹은 자신의 시를 읊고 혹은 선유(先儒)들의
시를 떠올리며 산 꼭대기로 오르니 그 정상에 훤칠한 을밀대(乙密臺)가 나온다.
거기에는 사허정(四虛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일명 을밀대를 사허정이라 불러 온다는데 가만히 사방을 살펴보니
과연 동서남북 모두가 탁 트여 있어서 그 이름이 자못 일치함을 느꼈다.
하늘로 날아 오를듯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을밀대 아니사허정의
웅자(雄姿)! 이것을 보고 일찌기 당나라의 어느 시인이 이렇게 시를 지었다 한다.
錦繡山上頭 (금수산상두) 금수산 꼭대기
一臺平和掌 (일대평화장) 손바닥 처럼 평평한 대가 있다네
恐有天上仙 (공유천상선)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乘風時來往 (승풍시래왕) 바람타고 수시로 놀러 오는 곳이리
이때 마침 정자 위에서는 질펀한 풍악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안주와 술이 풍성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김삿갓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무슨 잔치냐고 물으니
평양부자 임진사댁 회갑연을 이곳에서 하는중이란다,
꽃다운 기생들이 태평가(太平歌)를 나즈막히 부르는 가운데
자손들이 부친께 헌수를 올리고 다음은 친지들이 올리는 차례가 되자
김삿갓도 술을 얻어 마시려는 마음에 그 행렬에 끼어 학수천세(鶴壽千歲) 하옵소서!
하며 돌아 서려는데 임진사가 언뜩보고 처음 보는 얼굴이라
김삿갓을 불러 세우고 묻기를 귀공이 누구신지
소생이 모르겠사오니 함자를 가르처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정중한 모습이 매우 진실되고 젊잖은 노인이었다.
김삿갓은 더이상 신분을 속일수 없어 세상을 내집 같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라
허기도 면할겸 이처럼 잔치에 끼어들어 결례를 저질렀소이다.
소생은 김립(金笠)이라 하옵니다.
옛..? .. 아니 ` 그러면 선생이 바로 저 유명한 방랑시인
<삿갓선생>이란 말입니까?
환갑노인 임진사는 뛸듯이 기뻐하며 오늘 선생을 만난건
평생에 크나큰 복이라며 감격에 겨워했다.
그러면서 임진사가 몇해전에 금강산에 갔다가 공허(空虛)스님으로 부터
뛰어난 김삿갓의 문장에 감탄해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하시는 말씀에
생전에 꼭 한번 뵙고싶던차였습니다. 한다.
금강산 공허스님은 당금 천하에 몇분 안되는 고승이기도 하지만
시문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재였고 드디어 몇해전 김삿갓과 암자에서 만나
몇일을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재주를 다하니 그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임진사가 그 공허스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이었다.
흥에 겨운 임진사는 여러 하객들에게 시선(詩仙) 김삿갓의 존재를 큰소리로 알리며
축하 하도록 권하니 졸지에 분위기는 거지행색의 삿갓에게 쏠렸고
무안해진 김삿갓이 자리를 뜨려하자 한사코 손목을 잡고 자기 집으로 가자 해서
마지못해 임진사 댁으로 가서 묵게 되었다.
김삿갓은 그날 밤부터 임진사가 수발을 들리기 위하여 열일곱 아릿따운 기생
산월(山月)이를 딸려 주어 잠자리까지 모시게 하니 이보다 더한 대접은 일찌기 없었다.
산월이는 비록 어리지만 몸매가 풍만하게 성숙하고 서글서글 하여
뭇 남정네들을 유혹 하기에 충분 했고 김삿갓이 첫날밤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자
짐짓 희롱의 말을 걸어 보았다.
삿갓 : 平壤妓生何所能(평양기생하소능) 평양기생은 무슨 재주를 가졌는고?
산월 : 能歌能舞又能詩(능가능무우능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시도 잘 짓지요
허허 ~ 산전수전 다 격은 노기(老妓) 뺨칠정도로 대답이 그럴듯 하다,
삿갓이 빙그래 웃으며 다시 물었다.
삿갓 : 能能其中別何能(능능기중별하능) 모두 잘한다지만 그중 특별히 잘하는건 뭔고?
산월 : 月夜三更呼夫能(월야삼경호부능) 달밤에 서방 불러 들이는 재주라오
하고 말 하더니 희롱은 그만 하시고 술이나 드사이다. 하며 곱게 흘긴다.
몇잔의 술을 거듭 마시고 산월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며 밤늦도록 시를 읊고
또 마시다 보니 취기가 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기생 외도다,
그녀와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은 역시 혼을 빼앗길 정도로 감미로웠다.
다음날 아침 곱게 단장하고 앉아 기다리는 산월에게
예곤옥(芮崑玉)에 대하여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 하므로
기루마다 알아보아 달라 일러 놓고는 그날부터 평양의 이름난 명승지 구경에 나섰다.
그리하여 연광정(練光亭)을 비롯 하여 부벽루(浮碧樓),망월루(望月樓)
풍월루(風月樓),영귀루(詠歸樓),함벽정(涵碧亭),쾌재정(快裁亭),영명사(永明寺)
장경사(長慶寺)등등 평양의 이름난 명소는 모두 다 둘러 보았다.
김삿갓은 경치도 경치지만 아름다운 누대마다 걸려 있는 옛 시인 묵객들이
시를 써서 걸어놓은 현판(懸板)을 감상 하는 재미가 더 좋았다.
부벽루 다락에 올라 언뜩보니 정도전의 시도 걸려 있고
고려때의 정보(鄭보)란 사람의 시가 더욱 마음에 든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登臨盡日却忘還 (등림진일각망환) 다락에 올라 진종일 돌아갈줄 모르고
食看樓前水與山 (식간누전수여산) 눈 앞의 산수를 정신없이 바라 보노라
喬渚鷺明煙雨裏 (교저로명연우이) 물가의 해오라기 보슬비 속에 선명 한데
倚蘭人在畵圖間 (의난인재화도간) 난간에 기대선 이는 그림 속에 있네
一天下애心何限 (일천하의심하근) 하늘이 훤칠하여 마음은 탁 튀여도
萬景爭牽眼未開 (만경쟁견안미개) 온갖 경치 서로 끌어당겨 눈을 뜰 겨를 없네
誰把蓬壺移此地 (수파봉호이차지) 누가 이 땅에 봉호를 옮겨 놓았는고
直將風骨換童顔 (직장풍골환동안) 나도 금시 신선이 된 것만 같도다
부벽루 난간에 기대서서 눈앞의 풍경을 황홀 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명시라 아니할수 없다.
김삿갓은 그 시를 오랫동안 감상 하다가 저 멀리 백은탄(白銀灘)
은빛 백사장을 바라보며 문득 건성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읊는다.
三山半落靑天外 (삼산반락청천외) 산은 높아 아득히 하늘 밖에 솟았고
二水中分白鷺州 (이수중분백로주) 물은 둘로 갈려 모래밭을 이루었네
已矣謫仙先我得 (이의상선선아득) 이태백이 그런 시를 먼저 썼기에
斜陽投筆下西樓 (사양투필하서루) 석양에 붓 던지고 다락을 내려오네
위에 있는 시의 두구절은 이백의 시를 그대로 인용한 시이다,
거기에 자신이 두구절을 더하여 이렇게 멋들어진 시를 읊으며 연광정으로 돌아 왔다.
연광정(練光亭)은 덕암(德岩)이라는 수백 척 절벽위에
날아 갈듯 솟아 있는 정자이다.
연광정은 성종(成宗)때 평안감사 허굉(許굉)이 지었다는데
규모나 건축미가 크고 뒤어난 걸작품이다.
일찌기 임란(壬亂)때 명나라 장수 심유경(沈惟敬)이
왜장(倭將)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강화담판(講和談判) 한 장소가 여기며
나라가 위급지경에 처하자 일개 기생의 몸으로 적진 속으로 숨어 들어가
왜장을 죽이고 순국절사(殉國節死) 한 평양명기 계월향(桂月香)이
평소 즐겨 찾던곳이 바로 여기다.
그 연광정 다락에서 굽어 보는 풍광이야 어찌 다 필설로 다하랴 !
능라도와 백은탄이 한눈에 들어 오고 왼편으론 대동루(大同樓)요
오른편엔 읍호루(읍濠樓)가 지호지간(指呼之間)인데
밤낮없이 용용한 대동감 위에는 사시장철 놀잇배가 무수히 떠 있다.
그러기에 그곳 정자에는 연광정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가 걸려 있었는데
숙종때 시인 김창업(金昌業)의 시에 이르기를
普通門外草靑靑 (보통문외초청청) 보통 문밖 벌판엔 풀빛 푸른데
浮碧樓前春水生 (부벽루전춘수생) 부벽루 앞 강엔 봄물결 이네
誰道吾行歸未晩 (수도오행귀미만) 일찍 돌아오라 그 누가 말했던고
杏花如雪滿江城 (행화여설만강성) 강마을엔 살구꽃이 눈발처럼 날리네.
또 정조때의 시인 조의겸(曺義謙)의 시에는 이렇게 읊었으니
그 아름다움이 어떠 했는가 ?
江樓四月已無花 (강루사원이무화) 사월이라 첫여름 꽃은 이미 져버리고
簾幕薰風燕子斜 (렴막훈풍연자사) 주렴 바깥 훈풍에 제비가 날아드네
一色綠波連碧草 (일색록파연벽초) 언덕 위 푸른 풀에 강물도 푸르니
不知別恨在誰家 (부지별한재수가) 이즈음 어느 누가 헤어지고 애태울꼬
역시 대동강은 사랑의 대동강이요 이별의 대동강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지사를 외면한체 용용히 흘러만 간다.
연광정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잔디밭에 때마침 진달래는 붉게 피었는데
그곳에서 10 여명의 노기(老妓)들이 둘러 앉아 화전놀이를 하고 있었다.
화전이란 소금물로 반죽한 찹쌀가루로 전병을 만들어 부칠때
진달래꽃을 넣어 익혀내는 매우 풍류적인 음식으로 꽃시절이면 의례히
시인 묵객들이 시회(詩會)를 이렇게 열기를 많이 했다.
김삿갓이 그 곳을 지나치려니 시장하던차에 고소한 기름냄새를 맡고
도저히 그냥 갈수가 없어 체면불구 하고 머리를 숙이며
지나가던 과객에게도 전병 몇장만 얻어 먹게 해 주십시요 하니
50쯤 되어 보이는 노기가 지금 시회가 막 끝나서 일어 나려던 참이었는데
남은 전병이 석장뿐이니 허물치 말고 자셔 주시요, 하는데 그 말품이 제법 공손 하다.
전병 석장을 게눈 감추듯 모두 먹어치운 김삿갓은 고마움에 이렇게 수작을 걸었다.
즐거운 시회에 불청객이 훼방을 놓아 죄송 하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뜻에 답례로 시 한수를 적어놓고 가겠습니다,
하며 일필휘지로 써 갈기니 내용인즉 이러하다.
鼎冠撑石小溪邊 (정관탱석소계변) 솥을 돌로 괴어 놓은 개울가에서
白粉淸油煮杜鵑 (백분청유자두견) 흰 가루를 기름에 튀겨 전병을 부치네
雙箸挾來香滿口 (쌍저협래향만구) 저로 집어 넣으니 입에는 향기가 가득하고
一年春信腹中傳 (일년충신복중전) 한 해의 봄소식이 뱃속에 전해 오네
이렇게 써놓고 일어 서려는데 기생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래 가지고
그 필적과 내용에 감탄하며 이 시를 선생이 지으신겁니까 하며 난리를 친다,
이에 김삿갓이 짐짓 손사래를 치며 아니올시다.
이 시는 명종때 풍류객 임백호(林白湖)가 지은 시입니다 하니,
모두들 일찌기 평양에 도사(都事)로 와 있던 백호(白湖) 임제(林悌)에 관하여
이야기 해 달라 졸라대는것이었다.
해서 김삿갓은 백호 임제의 이야기를 하였다.
원체 풍류를 타고난 임제는 평안도 도사(종5품관:관찰사의 부사격) 로
평양에 부임했는데 색향(色鄕) 평양에는 수천명 기생이 있건만
유독 마음속에 둔 여인은 한우(寒雨) 라는 기생뿐이었다.
한우는 외모도 출중 했거니와 시문과 풍류에도 능통하여
임백호의 마음을 사로 잡았지만 지조 높은 그녀는 좀체로
임백호에게 잠자리를 함께해 주지 않았다.
어느 초겨울 밤 단둘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임백호가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싶어
시조 한수 를 읊으니 <찬비>는 기생 한우(寒雨)요 은근히 동침을 요구한 내용이다.
북창(北窓)이 맑다기에
우장(雨裝) 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에 기생 한우가 어찌 임백호가 부른 시조의 뜻을 모르랴 !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조로 응수 하고 그야말로 달콤한 밤의 역사를 열어 젖히니
그 이상의 이야기를 어찌 다 하리요.
어이 얼어 자리 무삼 일 얼어 자리
비단이불 원앙베개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으셨다니 녹여 드릴까 하노라.
김삿갓이 능란한 입담으로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기생들은 박장대소를 하는중에 더러는 한숨을 쉬면서
어쩌면 옛날분들은 그렇게도 멋진 사랑을 했을까 ?
과연 요즘 세상에도 그런 풍류남아가 있을까?하면서
날이 저물었는데도 내려갈 생각들은 않고 한가지만 더 들려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하여 한가지를 더 들려주고 일어 서려는데 여러 기생들이
이제는 김삿갓을 존경 하는 눈빛으로 처다 보면서 선생도 필경
시인 아니냐고 물어 대는데 김삿갓은 그저 떠돌이 걸객이라고 대답 하였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몇몇 기생들이 한편 쪽에서 무엇인가 쑥덕거리더니
드디어 김삿갓에게로 몰려와 서는, 맞다! 그분이 아니라면
이토록 옛시와 역사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요 ... 아마도 선생은 김삿갓 !
그분이 맞으시죠? 하면서 난리법석이 나고 말았다.
김삿갓은 졸지에 신분이 밝혀지자 겸연쩍어 어쩔줄 몰라 하면서
그저 걸객에 불과한 소생이 김립,김삿갓이올시다! 하자
좌중의 기생들 모두가 그를 향하여 손뼉을 치며 정중히 머리숙여 예를 올리며 말하기를 존귀하신 어른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하며 정중히 술을 따라 올린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 가는데 그들은 도무지 내려갈 생각은 안하고
낮에 자기들이 지은 시를 가져와 김삿갓에게 강평을 해달라고 졸라댄다.
어쩔수 없이 시문을 적은 종이 뭉치를 받아든 김삿갓은
시는 짓는데 뜻이 깊은것이지 잘짓고 못짓는게 문제가 아니라며
미리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설명해 놓고서는 한장 한장 넘겨 보니
시의 수준은 보잘것 없는 수준의 졸작들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 부터 저만치서 새초롬해 보이는 제법 예쁜 기생 하나가 이런 말을 해준다.
저희들은 오늘 <門>, <村>,<昏> 세글자를 운자(韻字) 로 썼사옵니다.
아 ~ 그래요?... 하면서 넘겨 보니 영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것들이 무슨 시를 쓴다고.... 이렇게 속으로 중얼대며
넘겨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대작(大作) 의 명시(名詩)를 하나 발견 하였다.
거기에는 강촌모경(江村暮景) 이란 제하의 시가 아름다운 글씨로 적혀 있었으니
千絲萬樓柳垂門 (천사만루유수문)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
綠暗如雲不見村 (록암여운불견촌) 구름인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수 없네
忽有牧童吹笛過 (홀유목동취적과) 목동의 피리 소리 그윽이 들리는데
一江烟雨白黃昏 (일강연우백황혼) 보슬비 내리는 강촌에 날이 저무네.
김삿갓은 두번세번 읽어 보고 나서
이처럼 기가 막힌 시를 누가 썼습니까? 거듭 물어도 대답이 없다.
필경 이것은 누군가 남의 시를 베껴쓴것 이라라 여기면서
거듭 다그처 물었더니 아까부터 새초롬 하니 앉아 있던 기생이
얼굴을 반짝들며 선생님! 그 시는 제가 쓴 시입니다, 저는 죽향(竹香)이라 하옵니다.
바라보니 참으로 어여뿐 32,3세의 기생이었다.
거듭 김삿갓이 그녀의 시를 칭찬하자 다른 기생들이 기분이 언짢은지
선생이 우리들의 시를 모두 보셨으니 이번에는 선생이 우리들에게
시를 지어 달라는 주문을 한다.
김삿갓은 좌중의 어색한 분위기를 둘러보고 나서 이를 가라 앉히려면
도리없이 시를 지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일필휘지로 종이에다 먹을 듬뿍 먹여 연광정(練光亭)이란 제하의
시 한수를 똑같이 <門,村,昏> 세글자를 운자로 하여 써 갈기니
截然乎屹立高門 (절연호흘입고문)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
碧萬頃蒼波直番 (벽만경창파직번) 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물결 굽이치네
一斗酒三春過客 (일두주삼춘과객) 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술에 취햇는데
千絲柳十里江村 (천사유십리강촌) 천만 가닥 수양버들 십리 강촌에 늘어졌구나
孤舟鷺帶來霞色 (고주노대래하색) 외로운 따오기 노을빛 끼고 날아들고
雙白鷗飛去雪痕 (쌍백구비거설흔) 짝지은 갈매기 눈발처럼 휘나르네
波上之亭亭上我 (파상지정정상아) 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 위에 내가 있어
坐初更夜月黃昏 (좌초경야월황혼) 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
이 시는 연광정 위에서 저물어 가는 대동강을 굽어 보며 즉흥적으로 읊은 시로써
죽향(竹香)의 강촌모경(江村暮景) 시에대한 화답으로 읊었지만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아는이 없었다. 다만 죽향만이 의미심장 하게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날이 저물어 오므로 김삿갓은 여러 기생들에게 그동안 잘 얻어먹고 잘 놀았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 서다가 문득 예곤옥 에 대하여 알아보아 달라고 청하여 놓고
그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리하여 임진사댁으로 돌아오니 임진사가 반갑게 맞이하며
오늘 어디를 다녀 오셨냐며 영명사의 벽암(碧巖)대사가 여태껏
선생을 기다리다 조금전에 돌아 갔다 한다.
사실인즉 벽암대사와도 모르는 사이건만 벌써 김삿갓의 명성을 들어 알고 시를 논하고싶어 만나고져 한다는 이야기였다.그러면서 아마도 내일 아침 찾아 오실거란 말을 덧붙인다.
그 영명사 벽암스님은 도가 매우높은 스님으로 시문에 능통 할뿐만 아니라
술도 잘해서 인근에 미치광이 스님이라 정평이 나 있다 하는데
술을 곡차(穀茶)라 부른단다.
김삿갓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벽루 서쪽 기린굴(麒麟窟)위에
영명사로 벽암대사를 찾아 갔다.
영명사 누각에 걸린 시 한수가 반긴다.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중승불견) 영명사 절에 중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전강자류) 영명사 절 앞엔 강물만 흐르네
山空孤塔立庭際 (산공고탑입정제) 산은 비고 뜰에는 탑만 홀로 섯는데
人斷小舟橫渡頭 (인단소주횡도두) 사람 없는 나루터엔 조각배만 떠도네
김삿갓은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들어온 느낌을 받으며 경내로 들어가
상좌에게 벽암대사를 만나러 왔다고 전하니 선실(禪室)로 인도하여 들어가니
80을 넘긴듯한 백발이 성성한 노승이 반기는데 첫눈에 거룩한 모습이 완연하다.
하여, 김삿갓이 어제 자리를 비워 대사께서 헛걸음 하신것을 사과 하니
벽암대사 김삿갓을 크게 칭찬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삿갓이 방안을 둘러 보니 벽에 족자 하나가 걸려 있으니 내용이 이러하다.
白雲千里萬里猶是同雲(백운천리만리유시동운)
구름은 천만리에 덮여 있어도 구름일 뿐이요
明月前溪後溪嘗無異月 (명월전계후계상무이월)
달은 앞내 뒷내 모두 비추나 다른 달이 아니로다.
김삿갓이 크게 감동해서 벽암대사에게 저 글은 대사께서 지으신 글입니까
하고 물으니 고승이 답하기를 저 글은 신라적 진경(眞鏡)선사 께서 읊으신
게송(偈頌)이라 한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벽암대사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있다고 상좌가 전한다.
문을 열고 밖을 보니 80이 넘어 보이는 쪼그랑 노인인데 벽암대사는
서슴없이 그 노인을 방으로 안내 하고는 그 연유를 물으니
내 나이 90 이올시다, 대사께서 영험 하시다 하니 더 오래 살게 해 주십시요 한다.
벽암대사 서슴없이 백살, 이백살 살아도 결국은 언젠간 죽는 이치를 말하며
타이르니 90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불교에 귀의하고 만다.
김삿갓은 이 광경을 보고는 역시 대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격했다.
이윽고 노인이 돌아 가고 선방엔 벽암대사와 김삿갓만이 남았다.
방문 너머로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이 한눈에 삼삼하다.
삿갓어른 ! 저기 보이는 놀잇배들을 여기 앉아서 멈추게 하려면 어찌 하면 되겠소이까?
김삿갓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물론 선문답(禪問答)의 정답이었다.
허면, 삿갓선생 ! 문을 닫지 않고도 배를 멈출 방법은 없겠소이까?
김삿갓 눈을 슬며시 감아 버리자 .... 벽암대사 크게 웃으며 좋아 한다.
대사와 삿갓이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고금의 명시와 고승대덕들의 게송을 논하며
곡차(穀茶:술)를 내오게 하여 취하도록 마셨다.
역시 벽암대사는 취해도 자세 하나 허트리지 않는다.
또 몇수의 시를 짓고 게송을 암송하며 술을 서로 권하며 환담중인데
또 밖에서 상좌가 이르기를 일영(一影)이란 보살이 김삿갓을 찾아 왔노라고 고하자
벽암대사 빙그래 웃으며 참으로 삿갓선생은 염복도 많으시구려 ~
타고난 미인에다 시도 잘 하는 일영보살이 이렇게 찾을정도면 말이외다.
하며 방안으로 들어 오게 하여 합장하는 모습을 보니 ...
아 ! 그녀는 다름 아닌 일전에 연광정에서 만났던 기생 죽향(竹香)이가 아닌가?
죽향이 조용히 앉아 저간의 일들을 이야기 하는데 자신이 어느 평양기생의
양녀로 끌려온 이후 예곤옥(芮崑玉)이란 이름을 버리게 하고 죽향(竹香)으로
개명 하였으며 기생교육을 강제로 시켜 거부하면 수도 없이 매질을 당했고
오매불망 보고싶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도 무서운 양모는 철저하게 가로 막으며
오로지 기생으로 살아가기를 종용했다 한다.
하기야 어차피 양모가 기생이니 그 양녀가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장성 해서는 남의집 첩실이나 소실 밖에 더 되랴 !
그럴바엔 차라리 이름 있는 기생이 되는게 낫겟다는 양모의 판단이 옳았던건 사실인데 ..그 어린 나이에 견뎌 내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던건 사실이다.
이제 그 양모도 죽고 아버지 살아 생전에 만나 뵙고싶은 마음을 가눌길 없어
이렇게 어른들께 결례를 범하고야 말았나이다 한다.
이에 김삿갓은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예동철(芮東哲)이며
이미 나이가 80을 넘겼다는 이야기와 사시는곳은 이곳 평양에서 50리 떨어진
중화고을 어느 산속의 길가에 성인주막(聖人酒幕)에 사신다고 했다.
죽향은 아니... 예곤옥은 슬프게 통곡하며 아버지를 뵙게해 달라며 꼭 수고스럽지만
김삿갓에게 그곳을 안내해 달라고 두번 세번 간곡하게 청하는게 아닌가...
예곤옥은 아예 벽암대사에게 자기가 삿갓선생을 지금 모시고 집으로 가겠다며 청하였다.
벽암대사는 흔쾌히 승락하며 일영보살(예곤옥)은 자신이 불가에 입문시킨 불제자이니
삿갓선생께서 잘 좀 도와 주시기 바라오 하며 일영보살에게 어서 모시고 가게 한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대동문 그처에 있는 죽향의 집에 오니 집은 작으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데 벽에 걸린 한폭의 족자에 눈이 멈춘다.
妾身倫落屬娼家 (첩신윤락속창가) 이 몸이 윤락하여 기생이 됐을망정
願得賢郞送歲華 (원득현랑송세화) 어진 낭군 만나 길이 섬기고 싶었소
不識郞心磐石固 (불식낭심반석고) 임의 마음 반석처럼 굳지가 못해
暫時移向別園花 (잠시이향별원화) 오래지 않아 딴 여자로 옮겨 갔구료
이 시를 보노라니 과연 죽향의 성품이 어느정도로 갈끔하고
여성다운 풍모인가를 짐작 할수가 있다.
죽향은 김삿갓을 모셔 오고는 정성을 다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 하기를 최고의
수준으로 하면서 거듭 아버지 만날 일을 상의 함에 내일 당장 떠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자 죽향은 아버지께 드릴 예물을 사야 한다며 출타를 하고 김삿갓에게 먼저
주무시라며 나가니 쓸쓸한 객고에 허전한 마음 한량 없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두사람이 말을 타고 길을 떠나는데 마치 한쌍의 연인이
유람을 다니는 기분이라 김삿갓이 짐짓 죽향에게 백년가약을 맺고
신행(新行)을 가는 기분이라 하니 죽향이 눈을 곱게 흘기며 부끄러워 한다.
산은 첩첩하고 물은 맑은데 어디선가 두견새 울음 소리가 영절스럽게 들려옴에
김삿갓은 즉흥시를 한수 읊는다.
春去無如老客何 (춘거무여노객하) 봄은 갔는데 늙으신 몸 어떠 하실까
出門時少閉門多 (출문시소폐문다) 방에 앉아 나들이도 안 하셨다니
杜鵑空有繁華戀 (두견공유번화련) 두견새야 뭐가 그리워 애타게 우느냐
啼在靑山未落花 (제재청산미락화) 울음 소리에 못다 핀 꽃 떨어질세라
김삿갓은 이렇게 예노인을 생각 하며 읊으니 죽향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삿갓에게 어서 길을 서둘자고 간청을 했다.
죽향이 감삿갓에게 그 성인주막은 아직 멀었느냐고 물으며 애타게 보고싶은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을 시로 지어 보겠노라 하므로 삿갓이 즉석에서 어서 지어보라 권한다.
相思人在山中村 (상사인재산중촌) 간절히 그리운 임은 산속에 계시건만
消息天涯久未聞 (소식천애구미문) 소식 모르는지 너무도 오래였소
今日獨涯芳草路 (금일독애방초로) 오늘은 오솔길 밟으며 찾아오건만
夕陽何處掩柴門 (석양하처암시문) 석양에 사립문 닫힌 집은 어디에 있는고
이렇게 두사람은 시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예노인의 집 성인주막에 다다랐는데
성인주막 이라는 주기가 거꾸로 매달린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고
집이고 근처고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죽향을 밖에 세워두고 삿갓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는데 다만 방 아랫목에 제삿상이 차려져 있고
거긴엔 다음과 같은 지방(紙榜)이 붙어 있는게 아닌가?
顯考學生府君 芮東哲神位 돌아가신 선비 예동철의 신주
이 지방을 보고 죽향은 엎드러져 대성통곡을 한다.
그동안 참고 살아온 온갖 서러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모두가 쏟아져 나오는듯
그녀의 통곡소리는 너무나도 애닮아 듣는이도 함께 울 정도로 섧게 운다.
가까스로 죽향을 진정시킨 김삿갓은 그녀에게 그 마을 풍헌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아 보기로 했다.
풍헌(風憲) 영감을 찾아가자 예노인이 운명 하던날
<곤옥아 너는 애비가 죽어도 찾아올 줄을 모르느냐>고 외치고는 돌아 가셨다 하며
동네 사람들이 집뒤 양지바른 곳에 묻어 묘소를 지었다는 말을 해주는데
죽향이 울면서 거듭거듭 감사의 절을 한다.
이어 성인주점 뒷산에 가 보니 예노인의 묘소가 있는지라
죽향이 또 다시 곡하고 예를 다 하였다.
그날밤 삿갓과 죽향은 예노인의 빈집에서 자게 되었다.
죽향이 삿갓에게 아버님의 상중(喪中)이라
만부득 선생님을 잠자리로 모실수 없사옵니다.
어찌 김삿갓인들 이런 마당에 그녀를 품어 그 정성을 망가트릴 생각인들 가졌겠는가?
염려 마시게 내 아무리 천하를 주유하는 걸객 이기로서니
자네의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
그러자 죽향이 결심한듯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내일중으로 평양으로 올라가 모든걸 청산 하고
이곳에 와서 3년간을 시묘살이를 할것입니다.
그녀의 다짐은 철석 같이 굳어 보였고 때마침 두견새 울음 소리는
처량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다음날 죽향이 평양으로 가는 길에 김삿갓도 함께 동행했다.
이제 대동강의 아름다운 모습도 엊그제 바라보던 풍류의 강으로 보이질 않았다.
삿갓 선생님 !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
어허 ~ 그렇군 평양에 자네가 없는데 내가 무슨 연유로 이곳에 더 있겠는가 ...
이제 자네가 떠나는걸 보고 나면 나도 이곳을 떠나 관서지방으로 갈것이네.
드디어 대동강가에 이르러 눈물을 펑펑 쏟는 죽향이 차마 배에 오르지 못하고
삿갓을 바라보며 울먹인다....
선생님 언제 또 뵈오려는지요 ~
소녀 꼭 다시 뵈옵고 모시기를 원하옵니다 ! 하며 시 한수를 읊는다.
大同江上別情人 (대동강상별정인)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楊柳千絲未繫人 (양류천사미계인) 천만가닥 실버들도 잡아 매지 못하오
含淚眼看含淚眼 (함루안간함루안) 눈물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斷腸人對斷腸人 (단장인데단장인) 님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그야말로 간장이 녹아 내리는듯 한 죽향의 시를 들으니
어찌 김삿갓이 화답을 않겠는가...
도도히 넘실대는 대동강을 바라보고 한수 읊기를
翠禽暖戱對沈浮 (취금난희대심부) 푸른 새는 강물에 정답게 노닐어
晴景欄珊也未收 (청경난산야미수)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만
人遠曼愁山北立 (인원만수산북립) 임 보내는 시름 북쪽 산에 어리고
路長惟見水東流 (로장유견수동류) 멀리 떠나는 길에 강물은 동으로 흐르네.
垂楊多在鶯啼驛 (수양다재앵제역) 꾀꼴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대고
芳草無邊客倚樓 (방초무변객의루) 나는 다락에 기대어 풀밭만 바라 보노라
召長送君自崖返 (초창송군자애반) 그대 보내고 나 홀로 언덕에 남으면
那堪落月下汀州 (나감낙월하정주) 달이 질때 설움을 어이 달래리
이렇듯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읊으니
죽향은 소매로 얼굴을 감싸고 울면서 마치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오다 헤어지는 연인들 처럼 차마 떨어지질 못한다.
선생님 이제 어디로 가시옵니까?
내야 정처 없이 떠도는 몸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걸세...
어서 배에 오르게나 ....
죽향은 설움이 북바처 올라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이별의 시를 읊조리는데
그 모습이 불쌍 하면서도 고혹적이다.
去去平安去 (거거평안거) 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長長萬里多 (장장만리다) 끝없이 머나먼 만리길
江天無月夜 (강천무월야) 하늘에 달 없는 밤이면
孤叫雁聲何 (고규안성하) 외기러기 슬피 울으오리다!
이 시 속의 외로운 기러기는 물론 죽향 자신을 말함이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한적도 없건만
이미 그녀의 마음에 김삿갓은 남이 아니었다.
언제고 다시 만나면 평생을 모시며 섬길 어른이라 여기며
가슴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삿갓에게 건넨다.
돈이었다.
아니 되네 ~ 자네가 더 어렵지 아니한가 ~
이 험한 세상을 여인네가 홀로 살자면 ...
아니옵니다 ~ 선생님... 당장 오늘밤은 어느집에 무슨 끼니로 ...
목이 메인 어조로 애원하는 죽향의 어여쁜 마음을 더이상 뿌리치지 못하고
허리춤에 받아 넣는 김삿갓 ....
더 이상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 볼수없어 울면서 돌아 서야만 했다.
죽향아 ! 부디 잘 가거라 ! 오늘의 우리들 이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 !
죽향이 오른 나룻배도 떠나가고 정처없는 나그네 김삿갓은
소리없는 눈물을 훔치며 관서지방을 향하여 떠나가고 있었다.
되는 대로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打浪打竹 풍타지타낭타죽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 반반죽죽생차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이대로 살아가고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부피죽
옳다면 옳거니, 그러면 그러려니, 그렇게 아세
賓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고
市井賣買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장터에서 사고 팔기는 시세대로 하세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불여오심죽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살아가세
이 시는 한자의 운을 빌어서 세상사의 흐름을 나타낸 것으로,
김삿갓의 뛰어난 재치를 다시 한 번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대나무(竹)가 쉽게 흔들린다는 것을 인용하여 ‘~대로’ 묘사한 대목은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천재적인 발상이라 하겠다.
문전박대 3
祠堂洞裡問祠堂 사당동리문사당
사당동이란 마을에서 사당을 찾으니
輔國大匡姓氏姜 보국대광성씨강
옛날 정일품 벼슬을 지낸 강씨 가문이라네
先祖遺風依北佛 선조유풍의북불
조상들이 섬긴 가풍은 불교가 분명한데
子孫遇流學西羌 자손우유학서강
못난 자식은 오랑캐 교육을 받았구나
主窺?下低冠角 주규첨하저관각
주인은 손님을 쫓고도 문틈으로 엿보는데
客立門前嘆夕陽 객립문전탄석양
나그네는 문 앞에서 기우는 석양을 탄식하는구나
座首別監分外事 좌수별감분외사
좌수별감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 벼슬이고
騎兵步卒可當當 기병보졸가당당
기마병이나 병졸이라야 그 품격에 어울리도다
김삿갓이 사당동이란 마을을 찾았을 때는 이미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때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들은 모두가 초라한데 반하여 큰 기와집이 있기에
기왕이면 큰집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기로 작정하고
대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주인은 문도 열지 않은 채
퇴짜를 놓고 대문 틈으로 나그네가 가는지를 엿보자,
김삿갓은 주인의 야박한 행동에 심사가 뒤틀려 지은
즉흥시라고 한다
문전박대 2
人到人家不待人 인도인가부대인
사람이 사람 집을 찾아와도
사람대접을 안 하니
主人人事難爲人 주인인사난위인
주인의 인사가 사람답지가 못하도다
設宴逐客非人事 설연축객비인사
잔칫집에서 손님을 쫓는다는 것은
주인의 도리가 아니거늘
主人人事難爲人 주인인사난위인
이는 주인이 사람답지 못한 때문이로다
김삿갓이 어느 고을 회갑 잔칫집에 들러 시장기나 달래
보려고 구걸을 하였으나 일언지하에 퇴짜를 맞자
심사가 뒤틀리고 주인의 소행이 괘씸하여 지었다고 한다.
문전박대 1
斜陽叩立兩柴扉 사양고립양시비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三被主人手却揮 삼피주인수각휘
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
杜字亦知風俗薄 두자역지풍속박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隔林啼送不如歸 격림제송불여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
해 저문 저녁 장안사 아래 어느 초가집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고자 대문을 두드리니 주인은
밖을 내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저으며
문전박대를 한다.
이에 김삿갓은 세상인심의
야박함을 시로써 달래고 바위 모퉁이 암굴에서
하룻밤 이슬을 피하였다고 한다.
내기 詩 1
主人呼韻太環銅 주인호운태환동
주인이 부르는 운자가 너무 '고리’고‘구리’니
我不以音以鳥態 아불이음이조태
나는 음으로 하지 않고‘새김’으로 해야겠다
濁酒一盆速速來 탁주일분속속래
막걸리 한 동이를 재빨리 가져오게
今番來期尺四蚣 금번래기척사공
이번 내기에는 자네가 진 것이네
어느 고을에서 김삿갓이 詩를 잘 한다는 詩客과
막걸리 내기를 하였는데 詩客이 韻字로
‘銅' ‘態’,‘蚣’을 부르자 김삿갓이 그 운을 부르는
대로 시로써 답을 하여 막걸리를 얻어먹었다고 한다.
내기 시 2
一粒粟中藏世界 일립속중장세계
좁쌀 한 알 속에 온 세계가 숨어 있어
半升?內煮乾坤 반승당내자건곤
반 되 들이 솥 속에서 하늘과 땅을 삶는다
二月江南花滿枝 이월강남화만지
이월이면 강남에서는 가지마다 꽃이 피니
他鄕寒食遠堪悲 타향한식원감비
타향에서 한식을 맞는 몸 고향 생각이 간절하구나
三五夜中新月色 삼오야중신월색
한가위 보름달에 달이 솟아 아름다우니
二千里外故人心 이천리외고인심
이천 리 타향 사는 친구의 마음은 어떠할까
四十餘年睡夢中 사십여년수몽중
사십여 년을 꿈속에서 살아오다가
而今醒眼始朦朧 이금성안시몽롱
이제야 깨어나니 눈앞이 텁텁하네
不知日巳過停午 불지일사과정오
해는 이미 한낮이 지난 줄도 모르고
起向高樓撞曉鐘 기향고루당효종
이제야 다락에 올라 새벽종을 치누나
김삿갓이 어느 주막에 주모와 시로써 술내기를
약속하고 주모가 읊은 시구에 화답하였다는 詩이다
숫자 시
二十樹下三十客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에게
四十村中五十食
망할 놈의 동네에선 쉰 밥을 주는구나
人間豈有七十事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不如歸家三十食
고향집에 돌아가 설익은 밥 먹느니만 못하리라
김삿갓이 함경도 어느 부잣집에서 걸식을 하다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숫자를 이용하여 표현한 시이다.
그의 뛰어난 재치와 풍자를 엿볼 수 있다.
이 숫자시에서는 김삿갓의 천재적이며
파격적인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다.
수 三十을 한글로 '서른'으로 읽는 데에서
'서러운'으로 표현했으며,
四十을 '마흔'으로 읽는 데에서 '망할'이라 하였으며,
五十을 '쉰'으로 읽는 데에서 '쉰'밥으로 표현했고
七十을 '일흔'으로 읽는 데에서 '이런'으로 나타내었고,
三十을 '서른'으로 읽는 데에서 '설 익은'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자의 독음과 한글과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한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시라 하겠다.
욕도 시로 읊는 여유(犬子) -김삿갓-
天脫冠而得一点 천탈관이득일점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어 달았고)
乃失杖而橫一帶 내실장이횡일대 (내(乃)자는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구나) 이 시는 김삿갓이 어는 부자집에 들러 하루 밤 묵고 떠나면서 주인에게 써 준 시이다.
김삿갓이 날이 저물어 하루 밤 신세 지려고 어느 양반 집에 갔것다 그 집 머슴놈이 하는 말 “우리 주인 마님은 손님을 맞아 들이는데 까다로우니 직접 찾아가 부탁하라”는 것이었다. 덧붙이며 하는 말 “주인장이 이마를 만지면 귀한 손님이니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리라는 표시이고, 콧등을 만지면 보통 손님이니 적당히 대접하고, 수염을 만지면 귀찮은 손님이니 쫓아버리라는 표시”라고 일러주었다.
김삿갓은 이 밀을 듣고 주인 영감에게 찾아갔으나, 행색이 초라한 김삿갓을 아예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하인이 달려와 주인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삿갓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영감님, 이마에 모기가 앉았습니다.”라고 말하자 주인영감은 허둥대며 이마를 수차례 비볐다. 그 모양을 본 하인은 무척 귀한 손님인줄 알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대접을 받았다.
한편 김삿갓에게 호되게 당한 주인영감은 이튿날 아침 아예 자신이 부엌으로 가 시커먼 꽁보리밥에 반찬은 짠지와 간장을 주었다. 김삿갓은 저 노인네가 내게 속은 것이 분해서 선수를 쳤구나. 야박한 늙으이 같으니라구….그렇다구 화낸다면 선비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 아주 아침밥을 잘 먹은 뒤 작별을 고하면서 “하룻밤 잘 머물다 갑니다. 제가 가진 것이 없어 드릴 수 없고 시나 한 수 지여 드리고 갈까 합니다” 하자 영감은 “그렇게 하시구려” 하며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김삿갓은 단숨에 아래와 같이 시를 써 주고 떠났다..
天脫冠而得一点, 乃失杖而橫一帶 천탈관이득일점 내실장이횡일대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어 달았고 내(乃)자는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구나
양반인 주인영감 체면 때문에 물어보지 못하고 낑낑거리다가 나중에 뜻을 알고 길길이 날뛰었었다고 한다.
그 뜻은 이러했다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을 하나 얻었다는 것은 개 견(犬)자이고, 내(내)자가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다는 것은 아들 자(자)로 즉, 개자식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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